[쿠키 사회] 자폐증 환자는 외부와 단절된 채 세상을 산다. 삶의 문을 닫아버린 그들에게 소통을 기대하긴 어렵다. 부모는 자식이 남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며 더불어 살아가는 ‘기적’을 바란다. 자폐증을 앓으면서도 주옥같은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 트리오에게 '미라클'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미라클 앙상블’은 은성호(26·피아노), 오동한(20·첼로)씨와 박가은(16·여·플루트)양이 결성한 팀이다. 세명 모두 자폐증을 앓는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나 2009년 12월부터 지금까지 호흡을 맞추고 있다. 18일 기자와 만난 미라클 앙상블은 오군의 아버지 사무실을 전세 내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왈츠 - 차이코프스키': '미라클 앙상블' 2010년 8월 연습 동영상. 장애인 음악회에 출전을 앞두고 지도 선생님과 마지막 합주를 맞추고 있다. >
실력은 수준급이다. 지난해 10월 전국 장애인 음악경연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차지했다. 여러 해 호흡을 맞춘 17개 팀을 제친 이변이었다. 미라클 앙상블을 지도하는 오새란(31·여)씨는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 등 음악 전공자들이 도전하는 어려운 협주곡을 무대에서 선보일 정도"라며 "그 정도로 트리오는 실력이 좋다”고 칭찬했다.
호흡도 척척 맞는다. 연습 중 누군가 박자를 늦추면 나머지가 따라 맞췄다. 악기를 기계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 연주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자폐증 환자에겐 기적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실력을 인정받아 정부 기관이나 단체 등의 초청을 받아 공연하고 있다.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자신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등 1분1초도 가만있지 못하지만 무대에서는 진지한 음악가의 모습이다. “짧게는 20분, 길게는 1시간 정도의 연주회 동안 완벽한 정상인의 모습을 보여줘요. 공연을 마치고 관객 반응을 살피기도 해요. 평소와 무대에서의 아들은 180도 달라서 어떨 땐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보는 것 같다니까요.” 오군 어머니 박해숙(46)씨의 말이다.
장애를 뛰어넘은 연주 실력은 관객에게 특별한 감동을 준다. 제주 공연 일화 하나. 지난해 6월 한 아파트단지가 개최한 작은 음악회에서 미라클 앙상블 무대를 접한 당시 김방훈 제주시장은 큰 감명을 받았다. 김 시장은 감사패를 급히 제작해 다음날 공항까지 찾아와 이들에게 전달했다. 은씨의 어머니 손인서(54)씨는 “최고 실력가만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고 감격했다.
실력을 쌓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오군 어머니 박씨는 “남들은 한번이면 될 것을 자폐아들은 10번을 넘게 레슨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며 “누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쓸데없는 짓 좀 그만하라고 한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만만치 않은 학비도 큰 부담이었다. 기초생활수급에 의지해 생활하는 은씨 모자 가정으로서는 한달에 수십만 원 하는 개인 레슨비가 버겁기만 하다. 뜻있는 교수의 재능 기부로 무료 강습을 받고 있지만 고마운 손길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좌절하기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은씨는 뇌기능 장애를 가졌지만 특정 영역에서 천재성을 나타내는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보인다고 한다. 피아노 외에도 관악기인 클라리넷에 재능을 보이고 있다. 은씨는 몇년 전 한 교회 목사가 준 낡은 악기로 연습하고 있다. 악기 수명이 다했다는 소식이 온라인으로 속속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자발적인 모금을 벌이고 있다. 현재 300만원이 넘는 금액이 모였다.
“하루 서너 시간씩 방에 틀어박혀 연주만 해요. 아이가 음악을 통해 세상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고 또 연주 순간을 즐기는 게 보이는데 어떻게 그만 두라고 할 수가 있나요? 부모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세상 부모가 그러하듯 재능을 알아차린 이상 가르침을 멈출 수가 없다는 게 이들 어머니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