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시인의 아내’ 고민정이 마이크와 책을 동시에 잡았다. KBS 1TV 교양 프로그램 ‘책 읽는 밤’ 진행자로 새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KBS는 ‘책 읽는 밤’ 메인 진행자로 수려한 말솜씨와 책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을 갖고 있는 고민정을 후임자로 낙점했다.
‘책 읽는 밤’ 제작진은 진행자를 교체함과 동시에 프로그램 내용도 대폭 개선했다. 교수와 학자로 구성됐던 기존의 딱딱한 형식에서 벗어나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식견을 갖춘 전문가를 투입시켜 정보 전달을 용이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고민정은 ‘책 읽는 밤’ 프로그램의 적임자다. 단아한 이미지를 지닌 고민정은 KBS 미녀 아나운서에서 시인 조기영의 아내가 되면서 ‘시인의 아내’라는 별칭을 얻었다. 부창부수인만큼 틈틈이 책을 읽고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휴직계를 내고 중국 여행길에 올라 ‘샹그릴라는 거기 없었다’를 집필, 감각적 필력을 뽐낸 바 있다. 책을 가까이 해왔던만큼 KBS ‘책 읽는 밤’에 대한 애착도 강했다. 하지만 선임 신성원 아나운서의 깔끔한 진행에 탄성을 보낼 뿐, 시청자 중 한 명으로서 만족해야 했다. 그랬던 그에게 그토록 바라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 운전대를 잡은 채 차 안에서 얼마나 소리를 크게 질렀는지 몰라요(웃음). 정말 하늘을 날아가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런데 환호도 잠시, 제가 그 프로그램을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들더라고요. 기존에 마이크를 잡았던 신성원 선배가 진행을 정말 매끄럽게 잘하셨거든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긴 하는데 시청자에게 잘 전달될지 모르겠네요.”
매주 읽어야 할 책 분량도 상당하다. 프로그램 세부 코너 특성상 매주 추천책 3권, 고전 1권, 화제의 작가 1권 총 5권을 다룬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일주일에 한 권을 읽는 것도 힘든데 매주 5권은 이만저만 부담되는 분량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대본을 작성하기 때문에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정직한 정보는 신뢰를 준다고 믿고 있기에 매주 최선을 다한다.
“말이 다섯 권이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더라고요. ‘고전의 반격’ 같은 코너에서는 돈키호테가 1500페이지가 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5권짜리예요. 일주일에 못 읽어도 2권 이상은 읽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요즘 시청자는 정말 똑똑하고 정확하거든요. 제가 건성으로 읽었는지 꼼꼼히 읽었는지 집어내실 정도죠. 제작진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만 제가 책을 읽고 나서 진행을 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을 질문 포인트로 잡을 수 있고, 작가가 적어준 질문을 그냥 읽지 않고 살을 붙여서 쉽게 물어볼 수도 있고요. 요즘 빨간 펜을 들고 다니면서 밑줄 그으며 읽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웃음).”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고민정도 ‘책’을 좋아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잘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특히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정보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감이 서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대중 전문가가 저와 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시는데요. 다들 달변가이시고, 학식도 대단하시거든요. 그걸 제가 중간에서 어떻게 전달할지가 매주 촬영하면서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마니아가 있어서 그들의 욕구를 맞추면서도 쉬워야 하기 때문이에요. 아나운서 교육 기간 때 중학교 정도의 수준으로 정보를 전달하라고 배웠거든요. ‘편안하고 쉽게 말하자’는 생각을 갖고 진행에 임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남편에게 자문을 구한다.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할 때부터 옆에서 선생 노릇을 해줬던 고마운 남편은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조언자다. 아내의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고.
“자랑은 아닌데요(웃음). 남편은 아무래도 시인이다 보니까 저보다 책을 끼고 사는 시간이 더 많죠. 그래서 지식도 많고, 저보다 더 뛰어나요. 책을 보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남편에게 달려가요. 그러면 섬세하게 설명을 해주죠. 남편에게 들은 정보를 마치 제가 아는 것 마냥 시청자에게 전달할 때도 있고요(웃음). 1회 방송분을 보고 남편이 ‘좀 더 재밌었으면 좋겠다’ 하더라고요. 남편이 칭찬하는 날은 제가 진짜 진행을 잘할 때예요. 칭찬 한 번 듣기 어려워요(웃음).”
남편의 애정 어린 충고 덕분이었을까. 지난 4일 첫 마이크를 잡은 고민정은 진행 합격점을 받았다. 상당수의 시청자가 “기존 프로그램보다 이해하기 쉽다”며 호평을 보내고 있다. 이 같은 반응에 고민정은 감사한 마음을 드러내며 진행자로서 갖는 고민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바로 시청률이다.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SBS ‘강심장’에 밀려 3% 미만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밤 11시30분인데다 1TV라서 편성에 따른 핸디캡이 있지만 만족할 수 없는 성적표다. 그렇다고 포기하기도 이르다.
“다행이 제 프로그램을 보고 책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시청자 반응이 많더라고요. 문제는 시청률이죠. 좀 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는데…. 프로그램 성격상 인기 코너처럼 잘 나올 수 없지만 앞으로 좋은 성적을 내야겠죠. 그런데 동시간대 프로그램이 ‘강심장’이라 힘드네요. 게다가 ‘강심장’의 입담 좋은 강호동 씨와 감각적 진행으로 인기가 높은 이승기 씨가 있어서 더욱 그렇고요. 저도 이승기 씨처럼 패널과 소통이 잘 되고 시청자에게 다가가기 편한 감각적 진행을 하고 싶은데…. 남자 패널 분들이 ‘여자 이승기가 되어라’ 하시는데 경쟁상대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요? 저를 통해 많은 분들이 책을 좀 더 사랑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