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지구촌] 대량의 방사능 유출을 막지 못한 대참사에 일본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전방위적인 사명 감추기에 나섰다. 기숙사 문패는 물론 영업용 차량, 축구팀 유니폼에 적힌 회사 로고를 가렸다. 네티즌들은 “은폐에만 능하다”고 싸늘하게 반응했다.
도쿄전력의 사명 감추기는 네티즌 제보로 속속 알려지고 있다. 과거 자랑스럽게 사명을 내걸었던 때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이 인터넷에 돌면서 이 같은 사실은 밝혀졌다.
가장 먼저 알려진 사명 감추기는 도쿄전력의 기숙사 문패다. 관련기사: 도쿄전력 테러할까봐…기숙사 명패에 검은 테이프 ‘칭칭’
도쿄전력은 지난2일 직원에 대한 불만과 협박이 높아지고 있어 기숙사 문패에서 사명을 가렸다고 밝혔다. 최근 일본 네티즌들이 “도쿄 전력 닌교초 독신 기숙사 명패에 이름이 검은 테이프로 가려져 있다”며 은폐 의혹을 제기하자 이에 대해 공식 해명한 것이다. 도쿄전력은 기숙사 입구에 걸린 문패에 아크릴판, 접착 테이프를 붙이거나 사명을 뺀 새 문패를 제작해 달았다고 설명했다.
도쿄전력 도쿄지사는 아사히신문에 “직원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지난 22일부터 도쿄 내 모든 기숙사 문패에 사명을 가리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영업용 차량 사명 감추기도 네티즌 눈을 피해가지 못했다. <사진 맨위>붉은색 바탕에 ‘스위치’ ‘도쿄전력’ 등 영문이 적힌 도쿄전력 전기 자동차는 원전 사고 이후 커다란 살구색 테이프로 로고를 완벽히 숨겼다. 네티즌들은 원전 사고 전후의 자동차 사진을 비교해 올리면서 도쿄전력을 맹비난했다.
기숙사 문패 은폐 논란을 이미 접했던 네티즌들은 “도쿄전력은 원래 은폐 체질인가 보다” “테이프가 붙은 차는 도쿄전력 영업용차량이라고 보면 되겠다” 며 비아냥거렸다.
창설 때부터 지원했던 클럽 축구팀에도 도쿄전력 사명이 빠졌다. 도쿄전력은 ‘F도쿄’ 유니폼 뒷면에 도쿄전력의 영어 약칭인 ‘TEPCO’를 명기해왔다.
하지만 ‘F도쿄’ 선수들은 3일 자선경기에서 도쿄전력을 알리는 단어 위에 천을 덧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임해야했다. 스포츠호치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스폰 클럽에 “당분간 로고를 내보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자숙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라운드 광고판에서도 ‘도코전력’은 일시 제외됐다.
네티즌들은 “일시적인 감추기에 급급하다”고 도쿄전력을 비난하고 있지만 회사도 할 말은 있다. 도쿄전력에 대한 과격 행동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에는 한 무직자 남성이 차를 몰고 후쿠시마 원전 안으로 돌진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부야구에 있는 도쿄 전력 홍보관에 붉은 스프레이로 ‘원자력 발전 반대’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하기도 했다.
지난 18일에는 계획 정전(지역별로 시간을 정해 전기공급을 끊는 것)으로 열차가 지연됐다며 한 남성(41)이 지요다구의 본사 부지에 돌을 던졌다.
도쿄전력 전화 상담센터에는 계획 정전에 대한 항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상담이 폭주해 접수하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자 일부는 센터에 직접 찾아와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며 직원을 폭행하기도 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도쿄전력의 한 남성 사원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간의 비난을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도쿄전력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배척을 받는다는 것이다.
“저 뿐만 아니라 가족도 상당히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아내가 ‘체면이 서지 않는다. 친한 사람들도 치켜뜬 눈으로 흘겨지는 기분이 든다’고 얘기합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