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애자’ 박서원, 180번의 눈물 그리고 성숙

[쿠키人터뷰] ‘애자’ 박서원, 180번의 눈물 그리고 성숙

기사승인 2011-04-12 15:05:01

[쿠키 문화]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나 ‘엄마’를 불러볼까. 엄마는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야 그 소중함을 드러내는 존재다. 연극 ‘애자’는 철부지 딸과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한 번 더 엄마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연극 ‘애자’는 배우 내공에 공연 성패가 갈릴 만큼 연기력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딸 ‘애자’는 입체적 인물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 담임선생도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 학생이었다가 엄마와 매일 다투는 철딱서니 없는 딸로 순식간에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여기에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진심 어린 연기가 필요하다.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박서원은 연기 내공을 많이 쌓은 배우는 아니다. 지난 2009년 입문해 ‘로미오와 줄리엣’ ‘광수생각’을 거쳐 ‘애자’까지 3개의 연극 무대에 서본 게 전부다. 하지만 좌중을 압도하는 연기는 그가 신인이라는 것을 잊게 해준다. 엄마의 질병 재발 소식에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에서는 관객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박)해영 선배를 진짜 엄마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해서 그런지 감정 몰입이 잘 되는 것 같아요. 무대에 오르기 전 시선을 마주칠 만한 관객을 염두에 두기도 하고요. 그렇게 지목한 분이 저와 같이 눈물을 흘릴 때 저도 모르게 한없이 애자 역할에 빠져들어요. 특히 친엄마랑 싸우고 연극 무대에 서는 날이면 지나칠 정도로 눈물을 흘리죠.”

‘애자’는 지난 2009년 9월 개봉해 최루성 영화로 인기를 모은 영화 ‘애자’를 각색한 연극이다. 당시 38억 원이라는 적은 제작비를 투자했음에도 전국 관객 191만 명(영화진흥위원회 기간별 박스오피스 기준)의 사랑을 받으며 잔잔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배우 최강희와 김영애의 농도 짙은 연기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 영화는 지난해 5월29일부터 연극 무대로 옮겨와 관객을 만나고 있다.

꾸준한 러브 콜에 힘입어 ‘애자’는 지난해 11월15일부터 지난 2월6일까지 1차 앙코르 공연을 마치고, 지난 3월6일까지 2차 앙코르 무대를 가졌다. 2차 앙코르에서도 재 공연 문의가 빗발쳐 지난달 14일부터 서울 대학로 인아소극장에서 3차 앙코르 공연을 진행 중이다. 박서원은 여러 번의 앙코르에서 줄곧 ‘애자’ 역을 맡고 있다. 박서원에게 ‘애자’는 모험과도 같은 무대였다.

“그동안 맡았던 역할이 거의 소극적 캐릭터였어요. 장르도 로맨틱 코미디에 한정됐고요. 그러다가 제가 코미디 연기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우연한 기회처럼 만난 애자는 조용한 저와 달리 매번 소리를 지르고 감정에 솔직한 인물이에요. 제 실제 성격과 반대라서 처음에는 정말 잘 해낼 자신이 없었어요. ‘애자’ 오디션을 보러 가는 날에도 ‘이건 정말 모험이야’ 반신반의하면서 무대에 섰고요. 지금까지 애자를 연기를 하면서 느낀 건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 하는 거였어요. 늘 똑같은 대본이지만 무대에 설 때마다 감동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애자’ 무대를 통해 새로운 저를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각색한 작품이라 원작에 대한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애자’ 최강희와 연극 ‘애자’ 박서원의 연기는 어떻게 다를까.

“원작이 있었던 데다 인기까지 많아서 배역을 맡기 부담스러웠어요. 영화보다는 전개가 10배 정도 빨라 캐릭터 잡기도 어려웠고요. ‘애자’를 거쳐 간 최강희, 소유진 씨와 비교해 제 인지도는 미미한 수준인데다 연기력도 부족해요. 하지만 색다른 애자를 보여드렸다고 생각해요. 영화 ‘애자’와 연극 ‘애자’는 캐릭터가 좀 다르거든요. 영화에서는 최강희 씨가 남성적 캐릭터를 많이 부각했다면 연극에서는 그런 면이 배제됐죠. 엄마와의 감정 대립을 주축으로 하다 보니까 새로운 애자가 탄생될 수 있었습니다.”

앙코르에 앙코르가 끊이지 않다 보니 애자 역할을 맡은 지 5개월이나 지났다. 상처가 많은 애자를 보듬으면서 자신도 치유됐다고 한다.
연기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타성에 젖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대사와 표정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 거짓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고도 했다.

“공연을 진행하면 할수록 연기력이 매끄러워지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장기 공연을 하다 보니까 감정 정리가 단조롭게 끝나는 것 같아요. 공연 5개월 차에 들어가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치기도 했고요. 습관적으로 대사를 하다 보니 감정 표현도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여러 모로 어려운 점이 있지만 관객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무대에 임하고 있습니다.”

애자 역할을 맡으면서 180번의 눈물을 흘렸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면 쏟은 눈물만큼 배우로서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숱한 눈물을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례식 장면은 가슴을 늘 먹먹하게 만든다고 고백했다.

“벌써 180번 무대에 서면서 180번이나 눈물을 흘렸네요(웃음). 특히 엄마를 완전히 떠나보내는 장면은 매번 슬퍼요. 눈물을 닦고 무대를 내려오면서 ‘아, 내가 조금씩 성숙한 배우가 돼 가고 있구나’라고 느껴요. 가장 큰 소득은 울지 않고도 관객을 울릴 줄 아는 법을 배웠다는 건데요. 솔직한 연기로 순수한 감동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극 ‘애자’는 다음달 8일까지 서울 대학로 인아 소극장에서 상연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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