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세상에서…’ 전경란, 공간에 추억을 덧입히다

[쿠키人터뷰] ‘세상에서…’ 전경란, 공간에 추억을 덧입히다

기사승인 2011-04-25 13:14:01

[쿠키 영화]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공간은 대사이자 등장인물이다.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 등장하는 ‘인희’(배종옥)의 집도 그렇다. 겨울의 차가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 보드라운 햇살로 변화시키고, 몰아치는 비바람을 온기로 만드는 ‘인희’의 집. 30여 년 동안 가족을 위해 희생해 온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며느리’로서 1인3역을 묵묵히 한 ‘인희’와 꼭 닮았다.

‘인희’의 집이 캐릭터와 일맥상통하며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던 건 전경란 프로덕션 디자이너(43)의 공이 컸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무대 미술을 전공한 전 감독은 뮤지컬 공연을 거쳐 영화 ‘열세 살 수아’(2007)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서양 골동 양과자점 앤티크’(2008)를 통해 쌓은 민규동 감독과의 인연으로 ‘오감도’(2009)를 거쳐 세 번째 호흡을 맞추게 됐다.

전 감독은 “서양 골동양과자점 앤티크’는 비주얼 싸움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공간 싸움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서양 골동 양과자점 앤티크’는 주연배우 못지않게 케이크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기존에 보지 못했던 화려하고 독특한 케이크를 찾는데 혈안이 됐었죠. 케이크가 일반 음식과 달리 뜨거운 조명에 흘러내리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색깔이 변해서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이래서 음식영화는 아무나 찍는 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에는 공간과의 싸움을 벌었어요. 평범하면서도 소박한 인생을 즐기는 여자 ‘인희’를 대변할 수 있는 집을 찾아야 했거든요. 정말 만만치 않았던 작업이었습니다.”



전 감독은 아트디렉터, 미술팀, 소품팀 등의 조언을 얻어 ‘인희’ 집 찾기에 총력을 다했다. 서울 일대를 이 잡듯 뒤지며 까다롭게 선별하던 중 눈에 들어온 집이 있었다. 서울 연희동 주택가의 정원이 딸린 소박한 집이었다. 전 감독은 보자마자 ‘바로 이 집’이라는 감이 왔을 정도로 외경부터 내경까지 모든 요소가 머릿속 풍경과 맞아떨어졌다.

“로케이션 헌팅팀에서 어렵게 구한 집이었는데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어요.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보람이 있더라고요. 집 구조부터 널찍한 정원까지 저희가 딱 원했던 그 집이었어요. 평범한 가정주부의 손때가 묻은 그런 집이었죠. 기대하지 않았는데 ‘인희’가 가정을 꾸린 것과 꼭 맞는 30여 년이 된 집이라고 하더라고요. 워낙 잘 보존돼 있어서 거의 손을 대지 않았어요. 집이 갖고 있는 추억의 무게를 고스란히 반영하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제목 그대로 세상과 이별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지난 1996년 MBC에서 방영된 노희경 작가의 동명 드라마를 원작으로 했다. 가족을 위해 매일 밥을 짓고, 귀가하기만을 기다리는 평범한 가정주부 ‘인희’가 자궁암 말기에 걸리면서 사람들과 헤어지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를 담았다. 전 감독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했던 ‘인희’의 모습을 공간으로 이야기했다.

“남편에게 한 자리 주고, 아들과 딸에게 한 자리를 주고…. 그러면 엄마는 정작 자신의 자리가 없잖아요. 다 퍼주고 난 뒤 남은 공간을 ‘인희’만의 세계로 재탄생시켰죠. 특히 이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빛’이었어요.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한 구석에 ‘인희’만의 장소를 마련했죠. ‘인희’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죽음이 한 줄기 빛으로 따뜻하게 추억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으려고 했어요.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떠남으로 상처를 입은 관객이 있다면 우리 영화를 보고 따뜻함을 얻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전 감독과 스태프의 손에 의해 ‘인희’의 분신으로 재조명 된 집. 따뜻함과 소박함이 스크린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온 ‘인희’의 삶이 그리 씁쓸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따뜻하고 유연하게 그려진 집의 온기 덕분인 듯하다.

노년의 사랑을 따뜻하게 그려낸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개봉한 지 두 달이 지났어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도 ‘감동 바이러스’로 극장가를 서서히 전염시키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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