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프로축구 FC서울은 ‘디펜딩 챔피언’이다. 탄탄한 서포터스 조직과 1000만 명의 수도 인구를 바탕으로 매년 정상을 노리는 인기 구단이 현재 정규리그 14위다. 총 16개 팀 중 꼴찌에서 3번째다. 승강급제를 운영했다면 1부리그 잔류조차 힘든 초라한 성적이다.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 감독으로 촉망받던 황보관(46) 감독은 지난해 12월 FC서울의 새 사령탑으로 발탁됐다. 취임 입성으로 “빠른 속도의 공격축구로 돌풍을 일으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넬로 빙가다(58·포르투갈) 전 감독의 업적에 뒤지지 않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황보 감독의 발언이 4개월 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서울은 26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황보 감독이 지난 24일 광주와의 정규리그 7라운드에서 0대 1로 져 14위로 추락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뜻을 25일 구단에 전했다”고 밝혔다.
올해 K리그에 수비축구 '광풍'이 불면서, 그가 추구한 화끈한 공격축구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수원 부산 대전 등은 약속한 듯 쓰리백 전술을 구사하면서 미드필더들까지 수비에 가담해 적게는 5명, 많게는 10명이 촘촘한 그물망 수비를 펴자 "정교한 패스와 빠른 속도의 공격"이라는 황보 감독의 전술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역습을 노리는 상대방의 공격전술에 FC서울의 수비라인은 와해됐다. 골은 안들어가고 상대편은 수비진을 뻥뻥 뚫어 실점을 안기는데도 황보 감독은 이에 대비한 전략을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
일본 J리그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코치와 감독, 부사장까지 역임했던 그는 경기 적응력이 떨어지고 한번 마련된 전략을 끝까지 고집하는 일본식 축구에 너무 젖은 나머지, 임기응변과 강력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프로리그와 너무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관중몰이를 위해 화끈한 공격축구를 보여주자고 입을 모았던 과거의 약속이 사실상 파기된 상황에서 황보 감독이 추구하는 ‘재미있는 축구’가 통할 리 없었다.
무득점 경기가 속출한 탓에 수비축구가 입방아에 오르내리자 황보 감독은 “결국 공격축구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유행을 탄 수비축구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선수 장악력도 문제였다. 황보 감독의 국내무대 복귀는 무려 15년만에 이뤄졌다. 비록 1988년부터 7년 간 프로축구 유공에서 뛰었던 경력이 있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운 탓에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만 했다.
사령탑 교체에 따른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바로 잡고, 부진으로 연일 추락하는 선수단 사기를 북돋아주기에 그의 카리스마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구단 측은 당초 황보 감독에게 힘을 실어줬으나 서울이 단 1승으로 전전긍긍하다 신생팀이자 최약체인 광주에까지 무너지자 더 이상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했다.
구단측은 황보 감독을 계속 신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황보 감독이 26일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자 이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1984년 럭키금성으로 창단한 뒤 단 한 명의 감독도 중도하차하지 않았던 서울의 오랜 전통도 황보 감독의 취임 111일 만에 그렇게 무너졌다.
황보 감독은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안타깝다”면서도 “FC서울은 곧 최강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팬들에게 꾸준한 응원을 당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