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물러설 곳은 없다. 벼랑 끝 승부다. 한국과 일본의 반세기 넘는 축구전쟁은 마침내 올림픽 메달 싸움으로 비화됐다.
한국은 8일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에 0대 3으로 완패했다. 같은 날 영국 런던 웸블리에서 열린 다른 준결승전에서는 일본이 멕시코에 1대 3으로 무릎을 꿇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결승 문턱을 넘지 못한 한국과 일본은 오는 11일 웨일스 카디프시티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단판승부로 동메달의 주인을 가린다. 사상 첫 올림픽 메달 대결인 만큼 어느 때보다 치열한 혈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승자는 동메달, 패자는 노메달… 너무 잔인한 한일전
한일전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포츠 라이벌전이다. 그 중에서 성인 남자 축구는 한일전의 백미다. 한국과 일본은 1954년 3월7일 스위스월드컵 예선(한국 5대 1 승)에서 처음 대결한 뒤 58년간 75번 충돌했다. 역대 전적(40승22무13패)에서는 한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지만 판세는 일본이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접전 양상이다.
두 팀의 경쟁은 동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뒤늦은 본선 신고식을 치렀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본선 첫 승을 거뒀고 각각 4강과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동반 달성했다.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나란히 결승 문턱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축구의 양대 국제대항전인 월드컵과 올림픽 본선에서 한일전이 성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성인 남자축구에서 한일전은 월드컵과 올림픽의 대륙 예선이나 아시안컵 및 아시안게임 등 대륙대항전, 정기전이나 친선경기 등 단일경기로만 치러졌다. 같은 대륙끼리의 승부를 피하는 국제대항전 본선 대진 편성의 보편적 방식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4강에 오르지 않는 한 만날 수 없었다.
유럽과 남미보다 약체로 분류되는 한국과 일본의 전력을 감안할 때 동반 4강 진출을 다시 기약하기 어렵다. 이번 런던올림픽 3·4위전이 한일전 사상 가장 치열한 혈투를 예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승자는 동메달 이상의 값진 기록을 남길 수 있지만 패자는 메달 획득 실패 이상으로 부담스러운 멍에를 뒤집어쓰게 될 것으로 보인다.
“너를 잡아야 내가 산다” 여론은 벌써부터 신경전
한국과 일본 여론은 벌써부터 신경전에 돌입했다. 유례없는 승부의 중압감이 여론을 자극한 것이다. 동아시아 정세와 역사 문제 등으로 오랜 세월 반목을 이어온 양국 여론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서 서로를 향한 자신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쏟아냈다.
일본 여론은 대부분 한국과의 대결 자체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8일 오전 일본 야후 네티즌들은 “한일전이란 이겨도 져도 불쾌한 기분(Fxxh****)”이라거나 “왜 매번 한국인가. 왜 하필 또 한국인가. 이상하고 몹쓸 운명의 장난(kpop_tokaK****)”이라고 토로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한일전에서 맹렬하게 돌변한다는 점과 올림픽 동메달까지 주어지는 병역 혜택을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쉽지 않은 일전을 예상했다. “런던올림픽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을 만난 것은 결승 진출 실패에 따른 벌칙(roc****)”이라는 자학적 의견도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여론은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과 선수들의 합법적 병역 혜택에 대한 염원이 많다. 이와 함께 지난해 8월 한일전 사상 두 번째로 세 골 차 완패를 당한 ‘삿포로 대참사’와 같은해 1월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당한 승부차기 패배 등 최근 잇단 부진을 만회해야 한다는 의견도 쏟아졌다.
트위터 등 SNS에서는 “지난해 완패를 복수하고 동메달을 차지하면 두 배로 짜릿할 것(@gzo****)”이라거나 “금메달보다 일본을 메달권 밖으로 밀어내는 게 우리 정서상 더 낫다(@pi****)”며 필승을 주문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