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땡, 게임 꺼”… 시행 1년만에 불붙은 셧다운제 폐지론

“밤 12시 땡, 게임 꺼”… 시행 1년만에 불붙은 셧다운제 폐지론

기사승인 2012-11-02 20:38:01

[쿠키 경제] 청소년의 심야게임을 제한한 ‘셧다운제’를 놓고 찬반논쟁이 뜨겁다. 게임하고 싶은 아이와 이를 막는 부모의 말다툼이 아니다. 우리나라 콘텐츠시장 2위 규모인 게임산업의 잠재력과 게임중독의 사회적 폐단 사이에서 견해가 충돌하는 국가적 논쟁이다. 결말 없이 반복되는 논쟁 속에서 셧다운제는 시행 1주년을 앞두고 또 한번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프랑스 국제게임대회 ‘아이언 스퀴드(Iron Squid)’의 스타크래프트2 한국대표 선발전이 열린 지난달 14일.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 각지에서 인터넷 중계방송을 시청한 1만여명의 네티즌들은 프로게이머 이승현(15·스타테일)군이 적은 한 줄의 채팅 메시지에 일제히 탄식했다.

“아 맞다. 셧다운하는데….”

자정부터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게임이용을 제한한 청소년보호법 제23조 3항, 이른바 ‘셧다운제’에 따라 경기를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이군의 절규였다. 서른두 명의 출전 선수들 중 마지막까지 생존하며 자정 직전에 결승전을 시작한 이군은 빠른 진행을 위해 무리한 공격전술을 감행하다 상대에게 승리를 헌납했다. 그리고 이군의 좌절은 ‘셧다운제’ 반대 여론에 다시 한번 불을 붙인 기폭제가 됐다.


◇“21세기에 웬 통금?” 신데렐라들의 반란=셧다운제에 대한 찬반논쟁은 그동안 꾸준하게 불거졌으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게 전개됐다. 셧다운제가 직업상 게임을 하는 프로게이머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 탓에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해외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셧다운제를 묻는 각국 네티즌들의 질문이 연일 쏟아졌고 조롱도 잇따랐다.

우리나라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에는 셧다운제 반대 여론이 거세게 몰아쳤다. 여기에 동참한 네티즌의 대부분은 셧다운제 적용대상인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여성가족부가 성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특정 과자의 판매를 금지하려 했다”는 등 허위로 밝혀진 괴소문들을 다시 배포하는가 하면, 문화체육관광부가 건전한 게임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만화 ‘민국이 엄마’를 성인물로 패러디하며 셧다운제 관련 기관들을 공격했다.

치기어린 불평만 쏟아진 것은 아니다. 성숙한 비판도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한 SNS 이용자(@gre****)는 “과거 통금(야간 통행금지)의 부당함을 경험한 세대들이 21세기로 넘어와 셧다운제라는 새 통금을 만들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헌법에 명시된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네티즌의 글은 100건 이상 리트윗(트위터 재배포)되며 다른 네티즌들의 공감을 얻었다.

일각에서는 셧다운제가 실효성 없이 게임산업에 악영향만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게임은 2011년 총 매출액 9조2000억원을 달성하며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에서 출판(21조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K팝이 주도하는 음악(3조8600억원)과 한류스타가 전면에 포진한 영화(3조4500억원)보다 2.5배 큰 시장 규모다.

경제적으로 큰 잠재력을 가진 게임산업이 지엽적 악영향만 해소할 수 있는 일부 규제로 위축될 수 있다는 게 셧다운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전병헌(54·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여성부 국정감사에서 “셧다운제에 따른 청소년 심야게임 감소율이 0.3%에 불과했다”며 “셧다운제가 청소년 보호의 실효성은 없고 게임산업만 망치는 이중규제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의 역차별을 해소하고 청소년 보호 정책이 무엇인지 다시 연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산업을 위해 청소년을 포기할 수 없다”=정부는 청소년의 지나친 게임몰입 증세, 이른바 ‘게임중독’을 방지하고 이 증세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폐단을 막기 위해 셧다운제를 시행했다. 수면권 보장 등 청소년의 건강한 발달 유도도 이 제도의 시행 목적 중 하나다.

셧다운제에 찬성입장을 가진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10년 뒤 발생할 문제점들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며 “최근 연이어 발생한 아동성폭력과 ‘묻지마’식 강력사건은 10년 전 인터넷보급 과정에서 음란물 확산과 게임의 폭력성 등을 방치한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청소년의 게임중독 실태를 광범위하게 조사한 자료는 사실상 전무하다. 다만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1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 자료에서 청소년의 게임중독 현황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률은 10.4%로 모든 연령층 중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 인터넷 이용목적에서 보통 사람은 뉴스검색(43.0%)을 가장 많이 선택한 반면, 인터넷 중독자는 온라인게임(41.3%)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여기에는 온라인게임의 영향이 작지 않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수치다.

셧다운제 주무부처인 여성부 청소년매체환경과 관계자는 “고도성장하는 게임산업을 위해 청소년보호를 포기할 수 없다. 셧다운제가 현재 반대 여론에 부딪혔지만 제도를 도입할 때 공감 여론은 분명히 있었다”며 “2년마다 한 번씩 이뤄지는 셧다운제 적용대상 평가를 업계와 여론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셧다운제란?

정부가 청소년의 게임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심야시간인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온라인게임 접속을 차단한 제도다. 이 제도의 찬반논쟁은 2004년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처음 불거졌다. 이후 점차적으로 확산되다 2010년 4월 12일 문화체육관광부가 하루 게임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피로도 시스템’의 전면도입과 ‘셧다운제’의 시행 방침을 동시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점화됐다.

정부는 지난해 5월 19일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따라 이 제도의 조항(제23조 3항)을 신설했고 같은 해 11월 20일부터 전면 시행했다. 여성가족부를 주무부처로 두고 두 달여의 계도기간을 거친 뒤 올해 1월 말부터 단속을 병행했다.

현재 이 제도의 적용대상은 인터넷으로 접속하는 PC게임과 CD패키지게임이다. 무선인터넷으로 접속하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모바일게임은 시행일로부터 2년간 적용이 유예된 상태다. 개인정보와 추가 이용료를 요구하지 않는 일부 CD패키지게임과 인터넷 접속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콘솔게임도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이 게임들도 오는 19일 유해성 평가에 따라 적용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김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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