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5월 4일 오후 서울 신당동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뮤지컬 ‘결혼’의 시작을 알리고 익숙한 얼굴이 무대에 섰다. 바로 배우 최종원. “날씨 참 좋습니다. 그런데 세상 살기 힘들죠”라는 입을 연 최종원은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극 중 집사 역을 맡은 최종원은 이 관객 참여형의 뮤지컬을 처음부터 흥미롭게 만들며, 약 1시간 40분가량의 이 뮤지컬에 자신만의 새로운 색깔을 더했다.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공연되기 전 만난 최종원은 “노래가 ‘쥐약’이야”라면서도 “배우는 시대가 요구하고 작품이 요구하면 변해야지”라며 새로운 모습으로 뮤지컬 ‘결혼’에 임할 것임을 예고했었다.
“지금 노래 가사 외우는 것이 힘들어. 마음은 급하지, 아까 했던 구절과 비슷하니까 버벅거리기 시작해. 연기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 쉽게 갈 수 있는데, 노래는 내가 감당할 것이 아니고, 지도받아야 하니까 ‘쥐약’이야. 그래서 지금은 괜히 한 것 같아 후회하고 있어.(웃음) 그래도 이번에는 랩도 하고 싸이 춤도 출 거야.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싶어. 사람들이 볼 때 ‘저것은 못하겠지’라는 예상을 깨는 것도 배우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는 사람들은 ‘왜 저래’라고 할지 모르지만, 현대는 현대대로 따라가야지. 난 배우가 옷을 벗느냐 못 벗느냐 이런 것을 대놓고 말하는 배우는 배우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작품이 마음에 안들면 어쩔 수 없지만, 작품은 마음에 드는데 옷 벗는 장면은 못하겠다는 것은 안돼. 작품의 미적 승화를 위해서, 이 육신이 뭐라고. 시대가 요구하면 나이가 80이든 90이든 시대에 맞춰 가야된다고 봐. 그래서 나도 새롭게 도전하고 싶어.”
‘결혼’은 한 남자가 결혼을 하기 위해 저택부터 몸에 걸친 옷, 구두, 시계까지 모두 빌린 뒤 맞선 상대 여성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종의 풍자극이다. 최종원은 이 남자에게 80분간 빌려준 것을 하나하나 빼앗아가는 집사 역을 맡았다. 동시에 두 남녀를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은 물론, 관객들을 극에 끌어들이는 역할까지 한다. 최종원은 자신이 말한 것처럼 4일 첫 공연에서 싸이의 ‘말춤’과 ‘시건방춤’을 소심하게나마 선보였다.
애초 최종원은 한 두회 정도만 특별출연을 요청받았었다. 그러나 이내 고정 출연으로 바뀌었다.
“정대경 대표와 관계도 있고, 그 극단에 내가 소속돼 있기도 해서 출연키로 했지. 원래 한두 번 특별출연을 나에게 부탁했지. 그런데 한두 번 연습하고 카메오 출연하면 부담 없긴 하지만, 내가 천재도 아니고 잠깐 연습하고 무대에 오를 수 있겠어. 한 회를 출연하더라도 기왕 연습할건데, 그럴 바에는 아예 고정으로 하자고 했지. 그리고 현재 브로드웨이 대형 뮤지컬이 너무 범람하잖아.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이런 뮤지컬도 있을 가치고 있다고 생각해.”
뮤지컬 ‘결혼’은 무대에 단 세 사람만 나온다. 맞선을 보는 남녀 그리고 집사다. 때문에 각각의 캐릭터는 뚜렷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기존 ‘결혼’에서 아쉬웠던 것은 집사 역이 나이에 맞지 않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극의 무게를 잡으면서, 남녀와 관객들의 매개가 되어야 하는 집사를 젊은 배우들이 맡다보니, 몰입도가 다소 떨어지기도 했다. 최종원 역시 이 부분을 아쉬워했다.
“뭐 노래하는 친구들만 불렀으니까. 집사를 나와 함께 맡고 있는 하지원이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어. ‘네가 음대 나와서 노래는 잘한다. 그러나 결국 배우로 남아야 하지 않나. 노래는 잘하는데, 집사가 안 보인다. 집사 성격을 알고 노래를 해야 된다. 집사 성격을 잡고 그 성격에 맞춰 노래를 불러라. 그래야 작품에 맞는다’라고 이야기를 했어. 작품을 만드는데 아무리 열악하다 하더라도, 그건 잘못이라고 생각해. 집사가 갖는 이 공간 속에서의 파워가 있는데, 노래는 잘하는데 연기가 개판이면 이 작품이 어디로 가겠어.”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놓자 최종원의 감정이 올라갔다. 선배로서 당연히 걱정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정치 등으로 밖으로 돌던 최종원이 다시 연기자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연기는 거짓이 아니라 진짜로 해야돼. 감정 폭발로 대사를 해야 하는데, 하는 순간부터 거짓말을 하려니까 제대로 된 연기가 안 나오는 거야. 벽에 머리를 박는 연기를 하려면 피가 나올 정도로 보여줘야 하는데, 우리는 조심하고 자기 견제를 하는 가짜 연기부터 먼저 배웠어. ‘가짜 연기’ 틀을 쓰는거지. 전에 박중훈과 영화 ‘총잡이’를 찍는데, 내가 중훈이를 패는 장면이 있었어. 그냥 때리는 장면인데, 내가 선배 입장에서 스스로 견제를 했지. 그랬더니 중훈이가 ‘선배 진짜 때려주세요. 감정이 안 올라오잖아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난 그 이야기 듣고 놀랐지. 그래서 다시 제대로 했지. 그 다음날 중훈이가 ‘선배님 눈이 빠질 지경이에요’라며 웃으며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렇게 감정을, 현장을 스스로 몸에 답습해서 리얼하게 연기를 해야돼.”
최종원은 정치 이야기를 꺼내자 ‘에고고’라는 반응을 먼저 보였다. 그러면서 “한번 경험해 봤잖아. 다시 정치하라면 당연히 못하지”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다고 해서 최종원이 연기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다. 강원도 평화예술촌 건립에 힘을 보태고 있고, 최근에는 전남 고흥 영상문화위원회 이사장을 맡게 됐다.
최종원이 출연하는 뮤지컬 ‘결혼’은 오는 6월 2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