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日 경제성장률, 한국 앞질러…근혜노믹스는 어디에?

[친절한 쿡기자] 日 경제성장률, 한국 앞질러…근혜노믹스는 어디에?

기사승인 2013-05-19 10:58:00

[쿠키 경제] ‘저건 새인가? 비행기인가? 아니…일본이다!’

18일(현지시간) 출간된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의 커버스토리 제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고 있는 그림이 표지를 장식했다. 아베 총리의 가슴에는 일본 엔화를 뜻하는 ‘¥’표시가 뚜렷하다.

아베노믹스가 먹히고 있다. 일본은행이 집계한 올 1분기 일본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기대비 0.9%다. 지난해는 2.0%였다. 수년간 마이너스 혹은 1% 미만의 성장에 멈췄던 일본 경제가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만이 아니라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경제전문 매체들이 일제히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1면 톱기사 혹은 주요 사설로 다루고 있다. ‘일본의 급성장으로 아베노믹스에 청신호가 켜졌다’(월스트리트저널) ‘아베가 야심찬 성장목표를 제시했다’(파이낸셜타임스)는 제목이 달렸다. 일본은행이 전망한 올해 실질GDP 성장률은 2.9%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실질GDP성장률은 2.0%. 올 1분기는 0.9%. 일본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올해 전망치는? 2.6%다. 일본보다 0.3%포인트 더 낮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일본에 역전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과 일본, 갈라진 운명

일본과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역전된 일은 15년 전에도 있었다. 1998년 한국은 -5.7%, 일본은 -2.0%를 기록했다. 맞다. 그때는 외환위기 상황이었다.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일, 혹은 경제 체질의 변화를 위한 과도기적인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다르다. 한국과 일본의 엇갈린 경제 상황은 내수 지표, 기업의 경기 인식, 주가지수, 대외 신인도 등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히 주가지수가 대조적이다. 일본의 니케이지수는 올해들어서만 30%가 넘게 상승했다. 반면 코스피지수는 지난주 2%가까이 급등했지만 여전히 지난 연말보다 낮은 수치다. 연합뉴스는 19일 ‘한국 경제 가라앉고 일본 경제 떠오르나’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이같은 현상을 보도했다.

불과 1~2년전만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일본 이코노미스트는 2010년4월에 ‘일본은 왜 계속 지는가? 최강 한국의 비밀을 배우자’라는 제목을 표지에 내세웠다. 삼성전자가 일본 전자업체를 제치는 현상을 주목하면서 현대차와 포스코 LG 등 한국 대기업의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일본을 따라잡아 세계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정부는 경제산업성에 ‘한국실’을 설치할 정도였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일본업체의 추격이 신경쓰이지만 겁나지 않는다”(2010년 1월)는 발언에도 일본은 호들갑을 떨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소니 히다치 등 일본 전자기업 상위 9개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일본은 한국의 성장 비결로 ‘혁신과 변화, 세계를 향한 도전’으로 분석했다. 일본 기업들이 내수시장에 머물러 있고 자기만의 방법을 고집하는데 반해, 한국 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서구식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세계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 젊은이들은 해외 유학에 적극적인데 일본 젊은이들은 오히려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꺼리고 있다며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불과 3년만에 바뀌었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속성장 시대는 이미 끝났고, 청년실업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노령화와 빈부격차 확대는 이제 뉴스에서도 다루지 않을 정도로 일상적인 일이 됐다.

반면 일본은 경제성장률 회복과 함께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논의까지 벌이고 있다. 노령화는 새로운 ‘실버 경제’의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엔저와 함께 수출 시장 공략에도 다시 도전하는 분위기다.

한국은 3년 연속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을 기록했고, 일본은 2년 연속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일본식 장기불황이 (한국에) 고착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경고했다.

그 사이 무엇이 바뀌었는가? 한국에선 이명박 대통령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 바뀌었지만 보수정당의 정권 연장으로 경제 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간 나오토 총리, 노다 요시히코 총리 등 민주당 정권이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무너뜨리며 새로운 경제를 추진했으나 지난해 아베 신조 총리의 등장으로 다시 보수 정권이 재집권했다.

해외 언론들은 일본 경제의 변화가 아베노믹스의 영향이라고 한다. 아베 총리가 집권한 것은 지난해 12월 26일이었다. 5개월도 되지 않았다. 무엇이 이렇게 극적으로 일본을 변화시켰을까? 한국은 왜 일본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을까?

아베노믹스vsMB노믹스

아베노믹스는 명확하다. 물가상승률 2%를 목표로 통화량을 2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여기에 소극적이었던 일본은행 총재를 아베 총리의 경제자문관으로 갈아치울 정도로 적극적이다. 엔화 가치가 급락해 4년여만에 1달러당 100엔을 돌파했다.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회복되면서 ‘해볼만하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이런 경제 정책 기조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MB노믹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전 대통령과 같은 소망교회 교인이었던 강만수씨는 MB정권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에 올라 가장 먼저 환율을 주물렀다. 원화 가치를 떨어트려 수출을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대기업 총수를 청와대에 불러들여 대규모 투자를 독려하는 일도 빠트리지 않았다. 4대강 정비 등은 ‘녹색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서 찬사를 받았다. 아베노믹스와 유사하다. 일본정부가, 엔화 환율 하락을 우려하는 한국 정부를 향해 “한국도 원화 가치를 떨어트려서 수출을 늘리지 않았느냐”고 했을 정도다.

5개월도 되지 않은 아베노믹스를 5년전 시작된 ‘MB노믹스’와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아베노믹스도 몇 년 뒤에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MB노믹스는 시행초기에도 그렇지만 현재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5개월만에 ‘눈부신 성과’(월스트리트저널)를 기록한 아베노믹스와 대조되는 것은 사실이다. ‘통화가치 하락-수출 확대’라는 동일한 정책 기조를 가진 두 나라의 경제 정책이 왜 다른 결과를 가져오고 있을까.

환율 변동에 따른 경제 성장은 일시적인 처방일 뿐, 근본적인 경제 대책이 되지 못한다. 아베 정권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현재 일본 정부는 기업을 향해 “돈을 번 만큼 임금을 올려라”라고 압박하고 있다. 수출이 늘어나는 만큼 내수 시장이 확대돼야만 경제의 활력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는 것 뿐만 아니라, 대기업을 향해 “임금을 올려주라”고 공개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또 해외로 이전한 생산시설을 일본으로 되돌리는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음달 발표될 일본정부의 ‘경제 성장 전략’에 이같은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MB노믹스에는 내수 확대나 재분배 정책이 없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대기업이 독차지한다, 내수 침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이명박 정권 내내 이어졌지만 가시적인 정책은 없었다. 오히려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낮추고, 최저임금 상승은 최저로 억제됐다. 쌍용차 사태에서 보듯이 해외에 매각된 기업이 껍데기만 남는 과정에서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MB노믹스가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내수 시장 침체에 대한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금리 정책이 오랫동안 지속된 결과 가계소득 증가라는 부담만 커지고 있다. 맥킨지 컨설팅은 “한국 중산층의 54.8%는 적자가구”라며 “주택·사교육비를 해결하지 않으면 장기침체라는 무서운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무너지는 중산층, 창조경제는 어디에?

1990~2011년 한국의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 비중은 73.7%에서 63.8%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빈곤층은 7.8%에서 15.0%로 늘어났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소비 침체, 투자 위축, 인구 감소 등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 때 나타났던 현상이 대부분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4월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가계소비 지출에 부정적 영향을 뚜렷하게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적인 내수 침체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이 과거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아베노믹스는 한국에 결정적인 타격이 될 수도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50대 수출 품목 가운데 26개가 겹친다. 엔화 가치 하락에 힘입어 일본 기업의 수출이 늘어나면, 한국 기업의 수출이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달러 당 평균 110엔·1,000원 상황에서 제조업 영업이익이 26조원 증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출산-고령화 영향도 일본보다 한국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장기불황을 맞기 직전인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0.5% 포인트씩 높아졌다. 반면에 한국은 2012~2032년에 이 비율이 일본의 2배가 넘는 1.1% 포인트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에 생산가능인구도 일본은 5.1% 줄었지만, 한국은 10%나 줄게 된다.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도 정권이 바뀌었다. ‘창조경제’를 앞세운 근혜노믹스가 등장했다. ‘창조경제’는 정보통신기술과 제조업의 결함 등 일본의 아베노믹스보다 더 근본적인 경제 대책을 추구하고 있지만, 아직 실체가 불확실하다. 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도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느라 몇 개월을 보냈다. 일본의 새 정부가 내세운 아베노믹스가 반년도 안돼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한국의 경제는 여전히 더디다. 일본 주가는 연일 최고기록을 새로 쓰고 있지만 한국은 횡보하고 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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