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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하고 깊은 카리스마로 관객을 흡입하는 세계적 배우 틸다 스윈튼이 거장 봉준호 감독과 손을 잡았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열차의 이인자 총리 메이슨 역을 맡은 그는 헐벗은 꼬리칸 빈민들 앞에서 화려한 모피로 몸을 감싼 채 엔진과 질서의 숭고함에 대해 거만하게 설교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도전을 즐기는 틸다 스윈튼은 캐릭터를 위해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의상은 물론, 코를 들창코로 세우고 틀니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틸다 스윈튼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자신을 지우고 메이슨으로 완벽 변신했다.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틸다를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만났다. ‘케빈에 대하여’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 50이 넘는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어려 보이는 외모를 가졌다.
자연스레 ‘아름답다’는 칭찬이 이어지자 본인은 “완전 늙었다. 그 증거는 아들이다”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나이 많이 들었어요. 제 아들을 보면서 나이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하죠. 그런데 나이 드는 것이 문제인가요? 어려 보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변화를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고, 젊게 살아야 한다는 공포도 없어요. 지금이 딱 좋아요. 6개월도 젊어지고 싶지 않아요.”
틸다 스윈튼은 전날(29일) 열린 기자회견에 이어 이날도 봉준호 감독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봉 감독의 팬이라는 사실을 밝힌 그는 봉 감독을 사촌 같은 가족이라고 표현했다.
“수많은 가족 같은 사람들과 작품을 했지만 데릭 저먼 감독을 잊을 수 없어요. 1994년 그가 죽기 전까지 9개의 작품을 함께 했죠. 그는 정말 유전자가 일치하는 ‘DNA 패밀리’ 수준이었어요. 그와 비교하자면 봉 감독은 사촌 같은 사람이에요. 두 번째 찾은 제 가족인 셈이죠.”
가족 같은 봉 감독과 함께 작업한 만큼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대단했다. 시나리오상 메이슨은 ‘양복을 입은 남자’ 캐릭터였지만 틸다 스윈튼이 맡으면서 여자로 변했다. 틸다는 그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부분에 아이디어를 냈고 이는 영화에 반영, 독특한 캐릭터로 탄생했다.
“처음 그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지도자의 초상을 생각해봤어요. 우리는 어떤 지도자가 인간적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왜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런 발상은 정말 식상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머리를 염색했고 메달을 만들어 어깨에 붙였어요. 허풍떠는 제스처 뒤에는 어떤 모습이 있을까를 상상한 거예요. 괴물을 만드는 모습을 떠올리며 메이슨 외모와 캐릭터를 창조했어요.”
영화에서 커티스와 메이슨은 거울 그림자 역할을 한다. 커티스는 심장을 가진 진실된 인물이지만 메이슨은 뜨거운 마음도, 진실도 없는 가면을 쓴 인물이다. 틸다는 메이슨을 상상하며 광대를 떠올렸다고 했다.
“가발조차 핀으로 정교하게 붙인 것이 아니라 가볍게 쓸 수 있는 모자였어요. 사람이 얼마나 쉽게 가면을 쓸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어쩌면 대본에 있는 것처럼 메이슨은 남자였을지도 몰라요. 큰 가슴을 가진 것은 여자처럼 보이기 위한 또 다른 가면일지도 모르죠.”
한편, ‘설국열차’는 인류가 빙하기를 맞은 후 노아의 방주처럼 남은 생존자들이 칸에 따라 계급이 나뉜 기차에 몸을 싣고, 맨 뒤쪽 칸의 지도자가 폭동을 일으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는 31일 전야개봉 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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