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한국과 브라질의 축구대표팀 경기를 한 시간 앞둔 12일 오후 7시 서울월드컵경기장 기자석으로 배포된 두 팀의 선발 명단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이기긴 어렵다.’ 저만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기자석 곳곳에서 같은 말이 새어나왔습니다. 네이마르(21·바르셀로나)와 헐크(27·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오스카(22·첼시) 등 핵심 전력을 모두 투입한 브라질의 선발 명단은 화려하다 못해 잔인했습니다. 예상대로 한국은 브라질에 완패하고 말았죠.
물론 이기기 위한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승수만 쌓을 생각이면 세계 최강 전력인 브라질과 맞서 싸울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이번 경기는 강호도 마다하지 않고 싸워 실험과 점검을 반복하면서 전력을 끌어올리겠다는 홍명보(44) 감독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 준비과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적어도 월드컵이 개막하는 내년 6월까지는 좌절을 통해 교훈을, 성공을 통해 희망을 얻는 게 더 중요할 겁니다. 이번 경기에서도 교훈과 희망은 한 가지씩 나왔습니다.
압박도 역습도 좋은데 그게 없으면…
한국은 압박과 역습으로 브라질에 맞섰습니다. 압박과 역습은 강호를 상대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전술입니다. 전반전까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청용(25·볼튼 원더러스)과 기성용(24·선덜랜드)이 가담한 중원의 강한 압박은 낙승을 예상한 브라질 선수들을 전반전 내내 흔들었습니다.
브라질의 수비수 마르셀로(25·레알 마드리드)가 전반 35분 김보경(24·카디프시티)에게 공을 빼앗겨 역습의 빌미를 제공하고 6분 뒤에는 이청용과 공을 다투다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 이유도 예상치 못한 우리 중원의 강한 압박으로 부담감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네이마르는 경기를 마친 뒤 “7번(이청용)과 16번(기성용) 선수의 태클이 거칠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죠.
문제는 골 결정력이었습니다. 중원과 후방에서 차단하거나 빼앗은 공을 전방으로 빠르게 넘겨 역습을 시도해도 브라질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마르셀로와 다비드 루이스(26·첼시), 단테 본핌(30·바이에른 뮌헨), 다니엘 알베스(30·바르셀로나)가 포진한 브라질의 막강 포백라인을 뚫는 것도 쉽지 않은데 우리 공격수들의 집중력까지 부족했습니다. 전방에서 번번이 득점에 실패하자 중원과 후방의 압박과 역습도 점차 힘을 잃었습니다. 결국 전반 종반인 43분 네이마르의 프리킥 슛에 골문을 열어주면서 결승골을 허용하고 말았죠.
우리 대표팀은 홍 감독이 부임한 뒤 일곱 번의 경기에서 아이티(4대 1 승)를 제외하면 두 골을 기록 중입니다. 3개월 넘게 지적을 받은 골 결정력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8개월 뒤 개막하는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세계 수준의 높은 벽을 다양한 전술로 극복하려 해도 골 결정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는 진리는 이번 경기가 남긴 교훈입니다.
강해지는 중원, 그리고 김보경
좌절 속에서 교훈만 찾은 것은 아닙니다. 희망도 찾았습니다. 갈수록 강해지는 중원은 월드컵 본선에서 우리 대표팀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김보경의 급성장은 가장 주목할 만 합니다.
2011년 1월 박지성(32·PSV 아인트호벤)이 은퇴하면서 한 차례 언급했다는 이유로 ‘박지성의 후계자’로 불렸지만 좀처럼 명성에 맞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김보경은 소속팀 카디프시티가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올 시즌부터 가파른 곡선의 상승세를 탔습니다.
지난 8월26일 맨체스터시티와의 프리미어리그 2라운드에서 0대 1로 뒤진 후반 14분 수비수 3명을 뚫고 돌파한 뒤 골문 앞으로 올린 크로스로 동점골을 거들었습니다. 비록 어시스트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의 발에서 시작된 이 동점골은 강호 맨체스터시티를 3대 2로 무너뜨리는 이변으로 이어졌죠.
김보경은 이번 경기에서도 넓은 활동범위와 과감한 돌파능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전반 20분 우리 페널티지역 안에서 네이마르의 날카로운 패스를 받고 골문을 겨냥한 알베스에게 정확한 태클을 가해 실점 위기를 넘기는가 하면 전반 35분에는 우리 진영에서 마르셀로를 뚫고 브라질의 페널티지역 앞까지 드리블로 돌파하는 파괴력까지 보여줬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이번 경기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자 희망은 김보경의 재발견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이번 경기에서는 중앙에서 왼쪽으로 위치를 옮기고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전망을 낳고 있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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