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시계를 나흘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지난 14일 오전 0시45분쯤 인천 구월동의 한 술집에서 폭행 시비가 벌어졌습니다. 현장에는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출신 이천수(32·인천 유나이티드)가 있었죠. 이천수는 손에 피를 흘린 상태에서 현장을 떠났지만 다른 한 무리의 손님들 사이에서 “이천수에게 맞았다”는 사람이 나왔고 경찰로 신고가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같은 날 아침부터 발생했습니다. 오전 5시30분쯤부터 이천수가 폭행 시비에 휘말렸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숱한 논란으로 사과를 반복하면서 자숙을 약속한 이천수가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천수가 술병 20개를 깨뜨렸다”는 술집 종업원의 진술이 나온 시점은 오전 7시쯤입니다. 이천수가 난동을 부린 정황까지 나오자 여론은 이천수에게 십자포화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인터넷 뉴스 게시판마다 그를 향한 비난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오전 9시30분쯤 이천수와 전화통화에 성공한 일부 언론 보도가 속속 나오면서 상황은 뒤집어졌습니다. 폭행 시비가 벌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이천수의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죠. 폭행 여부는 경찰과 검찰에서 가릴 문제지만 ‘가해자’가 아닌 ‘남편’으로서 아내를 보호했다는 이천수의 주장은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 구단도 이 같은 이천수의 주장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천수에 대한 동정 여론은 다음 날인 15일까지 계속됐습니다.
이번에는 시계를 이틀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하루 넘게 침묵을 지킨 이천수는 16일 오후 5시 인천 남동경찰서로 출석했습니다. 조사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찰은 폭행 피해를 주장한 김모(29)씨의 휴대전화를 던져 파손한 혐의(재물손괴)를 우선 인정하고 이천수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습니다. 폭행 여부는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정황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론에게 그는 여전히 아내를 지킨 남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같은 날 밤 경찰 조사 결과가 일부 나오면서 다시 뒤집어졌습니다. 오후 10시쯤부터 경찰이 이천수를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에서 김씨는 이천수로부터 얼굴을 두 번 맞았다고 주장했고 이천수는 “김씨가 구단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해 몸싸움이 있긴 했지만 때린 사실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습니다.
문제는 아내의 술자리 동석 여부였습니다. 당초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 이천수의 주장과 다르게 그의 아내는 현장에 없었다는 경찰의 1차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죠. 이천수를 향한 동정 여론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여론의 역풍이 몰아쳤습니다. 거짓 해명 논란이 벌어지면서 이천수는 더 큰 포화를 맞고 말았습니다.
이제 시계를 어제로 돌려보겠습니다.
이천수의 거짓말 논란은 반나절 넘게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인터넷 뉴스 게시판과 커뮤니티 사이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천수에 대한 힐난이 쏟아졌습니다. 언론과 여론 모두 그에게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축구대표팀과 프로축구에서 이천수를 퇴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일각에서는 그의 선수생활이 사실상 끝났다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현장 CCTV 분석 결과가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진 오후 5시쯤부터 상황이 복잡하게 꼬였습니다. 일부 언론이 “술집에 아내가 있었다”는 경찰 관계자의 말을 보도하면서 상황은 또 한 번 뒤집어졌습니다. 이제 여론은 수차례 번복된 상황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천수를 향한 비난과 동정은 사라졌습니다. 대중이 궁금한 건 '팩트'였습니다.
직접 물어봤습니다.
사건을 조사 중인 인천 남동경찰서 형사과장에게 17일 오후 7시30분쯤 전화를 걸어 전해들은 말은 이렇습니다.
“이천수의 아내는 싸움이 끝난 뒤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는 싸움의 상황과 무관하게 이천수로부터 ‘데리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술집으로 갔고, 싸움은 아내가 도착하기 전에 끝났습니다. 아내는 이천수를 데리고 술집에서 나왔습니다. 이천수와 김씨는 물리적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천수는 폭행 여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파손한 것은 사실입니다.”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상황은 다시 뒤집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경찰 조사로만 보면 적어도 이천수가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김씨와 시비를 벌였다는 주장은 허위입니다.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계획입니다. 제가 확인한 사실관계는 여기까지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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