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이 땅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주세요…타클로반 두 선교사의 생존 스토리

하나님 이 땅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주세요…타클로반 두 선교사의 생존 스토리

기사승인 2013-11-14 15:48:00

[쿠키 지구촌] 태풍 하이옌이 강타한 필리핀 타클로반 지역에서 사역해온 박노헌(45) 선교사와 사공세현(41) 선교사를 13일 밤 타클로반 시내에서 만났다. 두 선교사는 태풍 피해를 당한 주민과 교인들을 돌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안전을 염려해준 한국교회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타클로반 주민들을 위한 기도를 당부했다.

이 곳에서 각각 6년과 8년째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해온 두 선교사는 태풍이 닥친 지난 8일 이후 비에 젖은 교회를 청소하고 교인과 어린이들을 돌봤다. 전기도 통신도 끊긴 상황에서 외부와 제대로 연락할 수도 없었다.

나흘간 타클로반에서 사태 수습에 힘쓰던 두 선교사는 전날 가족을 3시간 거리의 이웃섬 사말로 피신시킨 뒤 하루 만에 다시 폐허가 된 타클로반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사공 선교사는 “선교사로서 교인과 원주민들이 걱정돼 서둘러 돌아왔다”고 말했다.

박 선교사는 태풍이 오던 날 아침 가족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태평양 바닷가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집이 지진이 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이내 양철 지붕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찢어져 버렸다. 천정이 무너지고 하늘에서 빗줄기가 쏟아졌다. 안방까지 물에 잠겨버렸다. 순식간에 닥친 일이었다. 5살 딸 아람이가 얼른 소리쳤다.

“아빠, 예수님께 기도해!”

딸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박 선교사는 가족을 부둥켜안고 간절히 기도했다. 박 선교사는 딸을 안고 사모의 손을 잡은 채 목숨을 걸고 옆의 교회 건물로 달려갔다. 필리핀 원주민 목회자 2가정도 함께 교회로 피신했다. 교인들까지 40여명이 교회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교회 지붕도 이미 들썩이고 있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이 땅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해일이 닥쳤다. 검은 흙탕물이 교회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얼른 아이들을 강대상 뒤편 다락으로 올려보낸 박 선교사는 흔들리는 지붕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 지붕까지 날아가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낮 12시쯤 비가 그칠 때까지 정신없이 기도했다. 가슴까지 차올랐던 검은 물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것을 기뻐할 수만도 없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나무는 뿌리째 쓰러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판잣집들은 폭삭 무너져 내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름다웠던 해변 마을이 폭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폐허로 변해버렸다. 교인들이 교회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이웃 아이들이 죽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거리로 나서니 빗물에 시신들이 둥둥 떠다녔다. 죽은 아이의 시신을 닦고 있는 젊은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교회 지붕이 날아가 버렸다면 박 선교사도 어떻게 됐을지. 그는 거리를 다니며 눈물을 닦았다. 기도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나님, 하나님….”

같은 시각, 인근 산골의 사공 선교사가 살던 선교센터에도 창문이 흔들리며 빗물이 새어 들어왔다. 목숨을 걸고 달려온 이웃들이 선교센터 문을 두드렸다. 사공 선교사는 얼른 문을 열고 주민들을 맞이했다. 산중턱에 위치한데다 튼튼하게 지어져 비교적 안심할 수 있었다. 사공 선교사가 담임하는 ‘빛과 희망 교회’는 지붕이 군데군데 찢어졌다.

밤이 되자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전력도 끊기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다. 전화도 되지 않았다. 시내에서는 총성이 들려왔다. 타클로반 외곽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살던 사공 선교사와 박 선교사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 토요일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차량을 부수고 상점을 파괴하고 다녔다. 대혼란이었다. 8000여명이 대피해 있던 곳이 무너져 타클로반 시장까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공무원은커녕 경찰도 군인도 보이지 않았다.

살아남은 주민들과 함께 교회를 청소하고 주일 예배를 드린 사공 선교사와 박 선교사는 이 일을 외부에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공 선교사는 11일 자전거를 타고 레이테섬의 서쪽 올목 항구로 달려갔다. 그 곳에서는 휴대폰으로 섬 바깥과 통화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가는 곳마다 시체가 널려 있고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고 있었다. 교도소 문이 열려 죄수들이 탈출했다는 소식과 계엄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공 선교사는 다시 자전거를 달려 밤늦게 타클로반으로 돌아왔다. 교인들이 빨리 피신하라고 다그쳤다.

“지금 외국인들이 약탈을 당하고 있어요. 목사님도 빨리 피하세요.”

12일 날이 밝자 사공 선교사는 승용차에 박 선교사의 가족까지 태워 사말로 향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사말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가족이 머물 곳을 겨우 마련한 뒤 두 선교사는 다시 타클로반으로 향했다. 산악지역의 게릴라까지 도시에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13일 시내를 둘러본 두 선교사는 “태풍 직후보다는 안정돼 보인다”며 “이제 최악의 상황은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와 대화하는 중에도 한국에서 두 선교사의 안부를 묻는 전화가 계속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타클로반을 위해 기도하며 모금하고 있다는 소식에 사공 선교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는 “필리핀 사람들도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타클로반을 위해 한국인들이 기도해준다니 참 감사하다”며 “현지어를 할 수 있고 원주민들과 함께 지내온 우리 같은 선교사들이 할 일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선교사는 “이 지역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많이 입어 가슴이 아프다”며 “너무나 갑작스런 일을 당해 경황이 없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다시 일어서고 복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힘 쓰겠다”고 다짐했다.

두 한국인 선교사는 형제처럼 서로 의지하며 타클로반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면서 두 손을 꼭 잡았다.

타클로반(필리핀)=글·사진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김지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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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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