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는 23일 충북 진천 거위농장에서 신고된 AI 의심사례가 고병원성으로 확진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당 농장에서 기르던 거위 700마리를 살처분했다. 지난 1월 발병 이후 3개월 이상 지났지만 AI는 종식되지 않고 있다. 철새가 돌아가면 AI 사태가 끝날 것이라던 정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서울 강원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AI 발병 사례가 나왔다. 축산농가의 출입을 통제하는 차단 방역으로 확산을 막을 수 있다던 정부 주장도 옹색해졌다.
이번 AI 사태로 인해 매몰된 닭·오리 등은 1200만 마리를 넘어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지난달 10일 이후 한달 여 동안 없었던 발병 사례가 다시 나타나면서 종식 선언도 6월을 넘겨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경계지역 바이러스 검사 및 이동제한 해제 조치 등 거쳐야 할 과정이 줄줄이 지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가장 늦은 AI 종식 기록으로 남게 된다. 종전 기록은 2011년의 5월16일이었다.
양돈 농가들은 돼지유행성설사병(PED) 때문에 시름이 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표본 조사 결과 올 들어 19%의 농가에서 PED가 발병했다. 발병 농가에서 1~3월 태어난 새끼돼지의 25%가 폐사했다. 연구원은 전국적으로 같은 기간 태어난 새끼돼지 가운데 5.8%가 PED로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바이러스성 질병인 PED에 감염된 돼지는 심한 설사와 식욕부진, 구토 증세를 나타낸다. 특히 생후 3주 이내에 감염되면 90% 이상 죽을 정도로 새끼 돼지에게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엔 연간 12건에 그쳤지만 올 들어 23일까지 공식 보고된 사례만 58건에 이른다. 축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서 발병 사례가 보고됐다. 정부는 예방 접종을 권장하지만 농가들은 PED 백신을 맞춰도 항체가 형성되지 않는다며 효능을 믿지 않는다.
게다가 휴전선 인근 축산 농가들은 구제역 초비상이 걸렸다. 북한에서 발병한 구제역이 전파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공기를 타고 50㎞ 이상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농협은 예방 접종과 차단 방역을 철저히 해달라고 해당 지역 축산 농가들에게 신신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축산 업계에선 구제역 백신 구입률이 60%대에 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방 접종을 해야할 돼지 10마리 가운데 4마리는 백신을 맞지 않는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구제역 백신은 돼지의 경우 목 부위에 접종하는데 고름이 생기는 등 ‘이상육’이 형성된다. 삼겹살에 이어 가장 높은 가격을 받는 목살 부위에 이상이 생기면 마리당 2만원 정도를 손해본다. 이에 일부 축산농가는 백신 접종을 기피한다. 정부의 허술한 차단 방역과 예방 조치를 꺼리는 농가의 방역 불감증이 가축 전염병 창궐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