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지만 관료는 영원하다던 공직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양경찰청 해체와 안전행정부 공중분해를 예고한 후폭풍이 가히 쓰나미급이다. 부처 기능에 따라 일부 이합집산이 이뤄지면서 전체 조직은 물론 공무원 개개인의 신상 변화도 불가피해졌기 때문에 관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20일 정부서울청사, 정부세종청사 등에선 일손을 놓은 채 삼삼오오 모여 불안감을 털어놓는 공무원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1998년 행정자치부 이후 비대해진 몸집을 대폭 줄여야 하는 안행부 직원들은 전날 대통령 담화의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 과장급 직원은 “조직개편 강도가 너무 세 앞날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패닉 상태”라고 말했다. 안행부 관계자는 “인사가 동결돼 현재 조직 그대로 국가안전처나 행정혁신처 등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그냥 조직개편 과정을 지켜볼 뿐”이라면서도 “조직이 사분오열되기 때문에 자리이동이 제한될 고위직들은 전전긍긍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안행부 직원들은 또 대통령 담화에서 언급되지 않은 의정기능과 복무윤리 등 세부 기능들이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조직개편 방향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한 관계자는 “재난안전 업무가 여러 조직으로 분산돼 있고 자연재난은 소방방재청이, 인적재난은 안행부가 주관하는 바람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효율적인 대처를 위해서는 재난관련 업무를 통합하는 국가안전처 신설이 바람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부처에선 직급 고하를 가리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 부처도 없어질지 모른다”며 입을 모았다. 모 부처 B국장은 “나랏일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공직자의 숙명이지만 공직 사회 전체가 공공의 적으로 매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C과장은 “공무원들의 사기가 이렇게 떨어진 것은 입사 20년 만에 처음”이라며 “공무원이 아닌 공공의 적으로 계속해 버텨야 하냐는 자괴감이 들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고위 공무원들은 크게 낙담했다. 관피아 척결이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대폭 강화로 이어지면서 ‘인생 2막’의 선택지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정년이 되기 전에 산하기관이나 유관단체로 옮기면서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았던 관행이 사라지게 된다. 업무관련성이 있는 사기업으로의 취업도 더욱 엄격히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임원급으로 옮겨 고액 연봉을 받아온 루트가 막히는 셈이다. D국장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년까지 버티겠다는 사람이 늘면 인사 적체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교육부 직원들은 퇴직 후 대학 재취업을 금지하는 법안이 이런 분위기를 타고 통과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행정고시 대폭 축소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E과장은 “행시는 누구나 노력만 하면 고위 공무원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민간경력자 채용은 좋은 여건에서 자란 소수에게만 기회가 독점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F국장은 “공직사회 진입경로를 다양화하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진행됐다”며 “정체된 공직사회에 경쟁과 혁신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진입 경로가 다양해지면 공직 윤리 확립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법고시 폐지 이후 로스쿨 출신 검사가 실무수습 중 ‘성상납 사건’을 일으킨 사례가 행정고시 축소 이후 되풀이 돼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선정수 라동철 정승훈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