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본이 정몽준 전 서울시장 후보의 월드컵 심판 매수 실언을 트집 잡고 나섰는데요. 이를 놓고 “미개한 한국은 국제 스포츠 무대 출전할 자격조차 없다”는 비판이 일본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타고 확산되고 있습니다.
17일 일본 혐한 본거지 2CH(2채널)과 혐한 블로그 등에는 ‘‘거듭되는 망신’ 계속되는 한국 스포츠의 그늘‘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높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사는 일본 스포츠신문인 ‘도쿄스포츠’가 지난 12일 전송한 것입니다. ‘한국 스포츠계가 페어플레이보다는 승부에 몰입한 나머지 창피한 짓을 벌인다’는 식의 주장을 늘어놓는 등 한국을 깎아내리려고 작심한 내용입니다.
매체는 기사에서 정 후보의 발언을 문제 삼았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새누리당의 에이스 정몽준 전 FIFA 부회장이 선거연설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에서 심판 매수를 시사하는 발언을 해 큰 문제가 됐다. 심판 매수를 당사자가 거론하다니 충격이 컸다. 정 후보는 심판을 매수할 만큼 힘 있는 남자로 비쳐지는 것 같다며 자랑삼아 말한 것 같다.’
정 후보가 이 발언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정 후보는 지난 1일 오후 서울 삼성1동 코엑스 피아노분수광장에서 선거유세를 펼치다 “FIFA 책임자가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이 준결승에 올라간 건 정몽준이라는 사람이 심판을 전부 매수해서 한 것 아니냐’라고 하는데 내 능력이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말했죠.
하지만 이는 유세 현장 분위기를 달구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농담에 불과한 것이었는데요. 일본 혐한이 이를 악용하는 것이죠.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FIFA 부회장까지 역임한 분이 유세현장에서 한 발언치고는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월드컵이 코앞인데 일본 혐한 세력이 이를 악용할까 두렵다”는 우려도 나왔고요.
도쿄스포츠는 혐한 서적을 펴낸 타지마 오사무라는 인물 까지 동원해가며 한국 스포츠계가 불공정한 일을 저질러왔다고 주장했습니다.
2009년 WBC에서 일본을 누른 한국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세운 일과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매수설, 소치올림픽 김연아 은메달 이의 제기, 일본 축구 유니폼을 욱일기로 우기기 등이 거론됐습니다. 여기에 FIFA 100주년 기념 DVD에 부록에 실린 월드컵 10대 오심에 한국과 관련된 사건이 무려 4건이나 올라왔다는 비판도 실었습니다.
매체는 이어 “한국이 국제 대회에 출장할 만큼 국민이 성숙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면서 “유교 영향과 조선시대 계급사회 때문이 아닌가 싶다”는 황당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네요.
황당한 억지 기사는 인터넷 곳곳으로 퍼지며 한국 비하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쿄스포츠가 SNS 지수를 산정해 집계한 ‘소셜랭킹’에 톱으로 올랐을 정도인데요.
사실 이 기사는 지난 12일 나온 뒤 별다른 눈길을 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5일 일본이 코트디부아르에게 1대2 역전패 당한 뒤 급속도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 혐한 매체들이 ‘한국 네티즌들은 한국 승리 보다 일본 패배를 기뻐하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혐한 네티즌들이 기사를 퍼뜨리며 경기에 진 분풀이를 하는 게 아닌 가 싶네요.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