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건강검진, 질적 성장 정체… 이대로 좋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국가 건강검진이 양적인 성장은 이뤘지만 질적인 성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검률 및 수검자의 만족도 등은 향상됐지만 건강검진의 효과에 대한 근거 등은 미흡하다는 얘기다.
특히 복잡한 국가 건강검진 체계, 한국인의 역학적 특성과 진료환경에 따른 목표 질환과 검사방법의 타당성 부족, 검진 프로그램의 비효율적 운영, 검진 후 관리 부족, 검진 효과의 평가체계 부재 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점들로 꼽힌다.
◇관련 정부 부처 4곳… 국가검진 7종류=정부가 진행하는 건강검진은 검진 종류나 관여하는 부처, 법령 등이 너무 많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국가가 진행하는 건강검진은 신생아, 임산부, 학생, 영유아, 일반, 생애전환기, 암검진으로 무려 7가지다. 여기에 관여하는 부처도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교육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가 각기 다른 목표로 국민 건강 정책을 짜고 있는 형편이다.
관계 부처가 많다 보니 관련 법령도 국민건강보험법, 모자보건법, 영유아보육법, 의료급여법, 암관리법 등 9개이고, 예산도 건강보험재정, 국민건강증진기금, 16개 시도예산 등 4곳이 집행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생활습관병 증가로 국민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겠다는 전략은 같지만 전술은 부처마다 각각 달라 효율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건강검진 기관수는 많아졌지만 검진의 질관리가 미흡하다는 것도 문제다. 건강검진기본법 시행으로 검진기관의 수는 2008년 5840개에서 2009년 6430개, 2010년에는 1만5346개, 2013년 1만8035개로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말 열린 서울대 보건대학원 세미나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건강검진을 하는 기관수가 증가한 것에 비례해 검진의 질이 향상됐다고는 할 수 없어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또 “검진기관 관리는 공단과 보건소 등 지자체로 이원화돼 있어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며 “검진기관 평가체계가 공단은 일반평가, 질병관리본부는 전문가 평가 등으로 이원화 돼 있어 평가결과 활용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근거 부족 하루아침에 해결 안돼=시스템은 정부가 변경하면 되지만 건강검진의 항목에 대한 근거부족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더 중요한 문제라고 걱정한다. 한림의대 주영수 교수(직업환경의학과)는 “건강검진의 의학적 효과는 대부분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위내시경이 위암을 조기 발견해 생존율을 높였다는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며 “위암에 대한 조기검진을 하는 곳은 일본과 우리나라인데 일본은 이 항목을 없애려고 하는 등 조기검진에 대한 논란이 존재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대 조비룡 교수(가정의학과)는 현재 건강검진의 목표 질환이나 검사방법 등은 근거자료가 부족해 외국의 권고안을 차용하거나 전문가 의견을 취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비만 이외의 항목과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의 골다공증 이외의 항목은 그냥 관성적으로 하는 측면이 있어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정상 범위 혈당에서는 공복혈당검사의 상관관계가 떨어지지 않지만, 혈당이 증가함에 따라 당화혈색소에 비해 급격히 떨어진다. 따라서 현재의 공복혈당검사는 재현성이 매우 낮으므로, 검사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국가 건강검진 이외의 민간에서 이뤄지는 건강검진은 정밀검사라 하더라도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위해한 가능성이 있는 검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진 대상자와 선정기준, 검진 항목의 보건의학적 근거도 부족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비사무직은 매년, 그 외는 2년 주기로 하고 있지만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 건강보험 자격별 검진 시작 연령이 다르고 연령의 상한도 없는 실정이고, 성별이나 연령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검사항목이 적용되고 있다.
◇검진만 하면 ‘끝’… 사후관리 ‘실종’=지난 2010년 4대 국가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은 65.56%인 1291만명이었다. 이처럼 많은 국민이 건강검진을 받고 있지만 사후관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1차 검진에서 유소견자의 2차 검진 수검률이 일반 건강검진에서 35.5%,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에서 28.38%에 불과한 것.
전문가들은 건강 위험요인은 생활습관개선으로 줄일 수 있어 대사증후군 관리가 중요한데 이에 대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 교수는 “건강검진 수검률이 2011년 72.6%임에도 사후 관리율은 2012년 21.6%로 저조하다”며 “생애전환기 검진에서의 생활습관 상담을 제외하면 예방접종, 금연, 절주, 영양 및 운동 등 1차 예방과 관련된 보건서비스는 더욱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말 서울대보건대학원 세미나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운영실 신순애 실장은 “생활습관병을 예방하려면 의사의 지속적인 개입이 효과적이지만 검진 프로그램에서는 일회성으로 그쳐 개선이 어렵다”며 “공단의 17개 건강증진센터와 서울시가 진행하는 대사증후군 관리사업을 팀 접근으로 하고 있지만 제한된 지역과 대상자에게만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부실한 검진이 될 우려가 있는 출장검진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출장검진기관 지정의 세부기준이 없고 출장검진 가능 지역에 대한 제한도 없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어 노후화된 검진장비와 협소한 공간, 사후관리 미비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 암 출장검진은 주요 질지표인 민감도와 특이도가 내원검진에 비해 낮게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이 외에 검진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 지역 가입자의 세대원,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세대원 등 19~39세 778만명은 검진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65세 이상 차상위 계층은 노인건강검진을 중복해 받고 있기도 하다.
◇대장암 검사단계 복잡, 간암 대상자 선정방식 문제=암 검진은 수검률이 낮다는 점과 검진주기, 대상자 선정 등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의 암검진 수검률은 2009년 45.3%, 2010년 47.8%, 2011년 50.1%, 2012년 39.4%, 2013년 42.8%로 매년 절반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내고 있다. 또 모든 연령대에서 획일적으로 선정된 검진주기도 재검토해야 하고, 암검진의 시작 연령은 설정돼 있지만 종료 시점이 없다는 점 또한 논란거리다.
위암 및 대장암 검진에서 1차 검진과 2차 추가검사 단계가 복잡해 효율성과 효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대장암의 검진방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장암 검진은 1년에 한 번 분변잠혈검사를 받고, 이 중 피가 섞여 나온 환자에 한해 내시경 검사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분변잠혈검사 참여율은 50%도 미치지 못한다. 또
이 중 내시경이 필요한 환자의 시행률은 10% 정도다.
건강보험공단 한길호 실장은 “그동안 많은 부분을 지적받은 대장암 검진을 대폭 수정하겠다. 수진율 제고를 위해 분변검사 대신 내시경 하나만 시행하고, 재정적인 부분을 고려해 그 주기를 5년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이 중 가족력이 있는 등 발병위험률이 높은 경우에 한해 2~3년에 한 번 주기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간암은 대상자 선정 방식에 문제가 있는데 고위험군이 아닌 대상자가 선정되고 있고, 대장암은 전년도 대장내시경 검진을 받은 사람이 당해 연도에 분별잠혈 검사 대상자로 다시 선정되는 문제가 있다. 치료 중인 암 환자 및 암생존자도 일괄적으로 대상자에 포함돼 있다.
만 40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유방암 검진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아시아 여성은 치밀유방인 경우가 많아 유방 X-ray로 유방암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데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
2009년 미국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는 40~49세는 유방 X-ray 검사가 필요 없고, 50세부터 74세까지 격년으로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유방암 검사를 너무 일찍 하면 허위양성이 많이 나와 불필요한 조직검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처럼 가이드라인을 낸 것이다.
올해 2월에는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캐나다 6개주에서 맘모그라피를 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 9만여 명을 20년 동안 추적 관찰한 Canadian National Breast Screening Study를 발표했다. 그 결과 유방암 사망률은 거의 같았고 오히려 유방암의 22%는 과잉진단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소와 연계해 사후관리 보강할 것”, 대사증후군 위험요인 많을수록 집중관리… 온라인 프로그램도 개발=정부는 건강검진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복잡한 검진체계, 근거가 부족한 검사 항목, 사후관리 부족 등은 개선 중이라고 밝혔다. 신생아, 임산부, 학생 등 7가지나 되는 검진체계는 국가건강검진제도 용역연구를 토대로 보건학적 근거에 기반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검진프로그램으로 개편했다.
0~7세에 실시하는 영유아 검진은 현행대로 유지하고, 8~19세에 진행하는 아동청소년 검진은 3년마다 1회, 20~30대에서 하는 대사증후군을 체크하기 위한 성인검진도 3년마다 1회, 40~50대를 대상으로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성인검진은 2년마다 1회, 60대 이상 노인성질환을 막기 위한 노인검진도 2년마다 1회로 정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길호 건강증진실장은 건강검진 주기 및 시작연령 일원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실장은 “비사무직도 사무직처럼 2년에 1회로 변경하고, 지역 세대원과 직장피부양자들도 20세 이상부터는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바꿀 예정”이라며 “일반검진과 암검진의 주기도 일치할 수 있도록 변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사무직 직장가입자의 일반검진-암검진의 주기가 다를 경우 한해를 건너뛰거나 앞당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타당성 평가연구 진행=건강검진의 검사 항목에 대한 근거 부족은 건강검진의 치명적 약점으로 계속 논의돼 왔다. 지난 2012년 6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서울대병원 조비룡 교수팀은 '현행 국가건강검진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타당성 평가 및 제도개선 방안 제시'라는 주제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조 교수는 건강검진 프로그램의 효율적인 운영과 효과적인 사후관리를 위해 무증상 일반인구 대상의 선별검사로서 적절하지 않은 검사 항목은 선별검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고위험군에 대한 진료 지원을 강화하고, 건강검진에서 진단된 만성질환자에 대해서도 해당 질환에 대한 선별검사를 중단하는 한편, 반드시 필요한 검사나 치료에 대한 진료 지원은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간장질환, 만성신질환, 빈혈, 시력, 청력, 우울증, 인지기능 등 무증상 일반인구 대상의 선별검사가 적절하지 않은 항목은 국가건강검진 프로그램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암검진에서 위암, 대장암, 간암은 74세, 유방암 70세, 자궁경부암 69세 등 상한연령이 필요하다”며 “위장조영검사와 대장이중조영검사는 폐지하는 게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민간 의료기관 참여 중요=정부는 검진 이후 사후관리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따라서 공단과 지자체, 의원간 역할 분담을 통해 효율적인 검진 사후관리를 한다는 계획이다. 대사증후군 위험요인에 따라 공단과 지역사회 자원 간 연계할 수 있는 사후관리 체계를 마련한다는 것. 위험요인 1~2개가 있는 사람은 건강정보 제공을 통해 생활습관을 개선하도록 유도하고, 위험요인 3개 이상인 사람은 보건소와 연계하거나 공단이 건강상담을 수행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실 신순애 실장은 “사업장 근로자 검진사후관리를 위해 IT를 접목한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해 사후관리 저변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직장인과 웹환경에 익숙한 젊은층의 접근도를 높이기 위해 사이버 검진사후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부의 생각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민간의료기관의 참여를 위해 환자의 진찰료와 본인부담금을 경감해주는 의원급만성질환관리제를 활용해 사후관리를 해결하려 했지만 의사의 책임이 불명확하고 환자들의 참여도 높지 않아 답보 상태에 있다.
정부는 건강검진 사후관리에서 보건소 등 연계사업 시범추진을 계획하고 있다. 검진을 받은 사람을 유질환자, 대사증후군위험요인보유군, 정상으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만성질환관리와 보건소 연계, 위험군 관리, 주의군 관리로 나눠 관리하는 것이다. 대사증후군 위험요인이 3~5개면 위험군 관리로 분류해 건강상담서비스와 공단이 직접 검진사후관리와 운동처방, 영양 등을 관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그림이다.
쿠키뉴스 제휴사 /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sunjaepark@mo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