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20대 여성이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을 일주일 넘게 점령했습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검찰의 발표와 우크라이나·대만에서 연이어 전해진 항공기 사고 등이 네티즌의 손가락을 바쁘게 했지만 그녀의 이름은 구글 트렌드의 이슈 키워드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네이버·다음·네이트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볼 수 없었을 겁니다. 오직 구글 트렌드에서만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죠. 24일 오후 3시 현재까지 그녀의 이름은 구글 트렌드의 이슈 키워드에 있습니다.
주인공은 아오이 츠카사(24)입니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한 일본 공포영화 ‘원 컷: 어느 친절한 살인자의 기록’의 주연으로 지난 17일 방한한 여배우입니다. 영화제 레드카펫 세리머니와 남성잡지 맥심코리아 편집국 방문, 팬 미팅 등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티즌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건은 없었습니다. 레드카펫 세리머니에서 노출 수위가 높은 드레스를 입지도, 꽈당 하고 넘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맥심의 화보를 촬영한 것도 아닙니다.
아오이가 구글을 점령한 원인은 독특한 이력에 있습니다. 알만한 사람은 알 겁니다. 아오이는 속칭 ‘야동’으로 불리는 성인비디오(AV) 출신 여배우이자 그라비아 아이돌입니다. 이 기사를 읽는 남성들 중에도 아오이와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만난 구면이 있을 겁니다. 참고로 저는 아닙니다.
네티즌들은 아오이의 영화제 출품작보다 과거 AV 출연작들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포털사이트보다 상대적으로 검색엔진의 성능이 좋고 걸러지는 정보량도 적은 구글로 몰렸습니다. 구글에서 네티즌의 검색이 증가하는 정보는 트렌드의 이슈 키워드로 표시됩니다. 이슈 키워드는 상황을 모르는 다른 네티즌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또 한 번의 검색을 유도합니다. 이렇게 검색이 검색을 부릅니다. 아오이가 일주일 넘게 구글 트렌드의 이슈 키워드를 점령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구글에서 아오이의 이름을 검색하면 AV 출연작을 소개한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토렌트(네티즌끼리 파일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의 일종) 좌표를 찍어주세요” “품번(AV 작품번호)이 어떻게 되나요” 등의 문의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 ‘원컷’에 대한 검색 결과는 뒤로 밀려 있습니다.
아오이의 입장에선 다소 서운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제 출품작을 들고 방한했지만 정작 우리나라 네티즌의 관심은 과거 AV 출연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죠. 아오이는 2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주요배급사를 통해 유통되는 영화와 지상파 방송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AV 여배우입니다. 아오이가 ‘원컷’을 통해 AV의 꼬리표를 뗄 수 있을까요.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