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진행한 연구성과 국민에 다시 파는 꼴
기획재정부가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지난 12일 발표했는데 이 중 눈에 띄는 것이 의과대학 산하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부분이다. 특허를 보유한 몇몇 대학에서는 환호성을 보냈지만 일각에서는 병원으로도 부족해 의대까지 영리화로 내몬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기재부의 생각은 의대가 갖고 있는 특허들을 활용해 서비스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현재 대학 부속병원들이 많은 의료기술 특허를 갖고 있지만 이를 활용하고 후속연구로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
기재부는 ""특허 보유 규모가 많은 국내 대학병원 연구수입은 전체 수입의 5% 미만에 불과하다. 또 대학병원은 대학의 부설기관이라 직접 특허를 소유하거나 사업화할 수 없다""며 ""산학협력단은 기술 출연과 수익배분이 학교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대학병원과 의사들의 참여 인센티브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의대산하 기술지주회사에서 발생한 수익을 병원으로 귀속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기재부 발표의 핵심이다. 당장 오는 9월 교육부가 870개의 특허를 갖고 있는 Y대 부속병원과 290개 특허를 보유한 K대 부속병원의 기술지주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승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기재부 발표 ""특허 정책 근간 흔드는 것""
기재부 발표에 보건의료 시민단체와 새정치민주연합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크게 3가지다. 산학협력법 위반, 의대를 영리추구하는 곳으로 내몰고 있다는 점, 의사들의 수술방법 등 치료법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 등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기술지주회사 설립은 산학협력법에 따라 대학이 설립한 산학협력단에 의해 설립할 수 있는데, 이는 교육기관인 학교가 직접 영리를 추구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교육기관 설립 본연의 목적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학교가 설립한 산학협력단에 의해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하도록 한 것은 산학협력법 위반""이라며 ""기술지주회사의 이익금은 산학협력단의 업무(법 제27조)와 대학의 연구활동에 사용하도록 한 법 제36조의 6 제1항 위반으로 유권해석만으로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기재부의 이번 발표는 특허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는 입장이다. 법률사무소 지향의 남희섭 변리사는 특허청 심사기준을 보면 의료행위는 인간을 수술, 치료하거나 또는 진단하는 방법의 발명 즉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산업상 이용할 수 있는 발명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적혀 있다고 말했다.
남 변리사는 ""기재부가 의료의 상업화, 사업화를 강조하면 의료행위는 산업상 이용 가능성이 없다는 특허청의 특허심사기준을 더 이상 적용하기 어렵다""며 ""기재부의 주장대로라면 수술방법, 치료방법, 진단방법에도 특허를 인정해야 하고, 만일 A병원의 수술에 대한 특허가 인정되면 다른 병원에서 그 수술을 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도 식물특허, 동물특허, 치료특허 특히 사람이나 동물을 위한 진단방법, 치료방법 등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고 했지만 철회됐다""며 억지스런 주장이라고 밝혔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위원도 의사들의 진단, 수술, 처방 등에 대한 치료법까지 특허를 부여하면 기존에 공개된 의학논문들에 특허를 걸고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 우려했다. 정 정책위원은 ""독점 특허는 비용을 증가시키고 의학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의학교육 수련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병원에서 의사들의 이윤추구를 위한 의료특허 정책은 올바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의과대학도 시장처럼 만들 것인가?
대학의 기술지주회사 설립은 1980년에 제정된 미국의 베이돌(Bayh-Dole)법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이는 대학교의 연구성과 또는 공공연구성과를 특허를 통해 사적 소유화 하는 모델이다. 베이돌법은 연구를 수행한 기관이나 대학교가 특허권을 소유하도록 하고, 이 특허를 민간에 팔거나 라이선스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특히 대학 내에 특허이전 전담조직(TLO)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베이돌법은 공공연구성과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생겼는데 긍정적인 변화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남 변리사는 ""베이돌법이 생긴 이후 특허 건수가 10배 이상 증가했지만 출원된 특허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졌고, 원래 목적이던 특허의 성과가 민간으로 흘러가지 않았다""며 ""제약사에게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게 됐고 결국 의료비와 약제비 폭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 ""대학이 특허를 보유하고 특허를 통한 영업활동이 강조되면서 연방정부의 예산이 축소됐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학과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베이돌모델은 연구성과를 연구수행 주체가 사적으로 소유하더라도 공적개입이 가능한 권한(March-in-Right)을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런 모델조차 없어 위험하다는 우려가 있다.
국민 세금으로 지원받아 진행한 연구 성과물을 국민에게 비용을 받고 제공한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정형준 정책위원은 ""의대 산학협력단에는 공적자금이 엄청나게 투입된다""며 ""기술지주회사를 통해 특허를 독점화 하면 국민이 낸 세금으로 개발된 연구성과를 국민들이 이용할 때 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공공연구의 사유화""라고 주장했다.
또 ""기술지주회사를 통한 직접적인 이윤배당은 연구자의 객관적 연구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며 ""치료재료, 약품, 검사 등의 편향적 사용으로 환자의 선택권은 줄어들게 된다""고 우려했다.
질병 치료를 연구하고 환자를 진료할 의사를 양성하는 의과대학이 전문지식을 팔아 상업화하고 그 이윤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시장이 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정 정책위원은 기술지주회사가 의대교수들을 자회사의 투자자로 만들려 한다는 걱정도 했다. 정부가 기술지주회사가 적은 자본으로 자회사를 네트워크식으로 많이 경영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했고, 의대교수들의 자회사 스톡옵션까지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 그 근거라는 주장이다.
정 정책위원은 ""현재는 본인이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한 자회사에서 수익이 발생해도 회사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경우 이익 보상이 곤란한 상황""이라며 ""기술을 개발한 교수가 기술지주회사 자회사의 스톡옵션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해 우수기술에 대한 출자를 유도한다는 게 기재부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의료특허에 대한 자회사의 주식보유, 기술지주회사의 경영지원회사 기능이 윤곽을 드러내면 모든 방식의 이익배당과 투자경로가 확보돼 사실상 영리병원과 같이 투자자들에게 배당이 가능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특허 보유 수,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순
기재부가 기술지주회사를 활성화해 의료산업 활성화를 꿈꾸고 있지만 실제 특허를 상업화 할 수 있는 의과대학은 많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판단이다. 9월 기술지주회사 승인을 할 것이라고 발표한 Y대와 K대 정도가 회사를 설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독립적인 산학협력단을 구축한 연세의료원은 이 분야에서 앞서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12년 별도 사업자를 등록하고 2013년에는 산학협력단 발명평가심의위원 위촉 및 발명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송시영 산학협력단장은 ""맞춤형 LAB 컨설팅, 특허전략 수립, 기술이전 전략 수립 등의 운영으로 다른 곳보다 더 많은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며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기술 이전한 것은 총 23건으로 계약금이 400억원이었다. 국내 병원 최초로 Global Patent Fair와 자체 주관 기술이전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기술이전센터가 진행한 2014년도 보건산업 IP인큐베이팅/기술사업화 통합 지원 사업에 6건의 특허가 선정되기도 했다.
2004년 출범한 고려대 산학협력단은 3500여개의 특허기술을 수요기업에 이전하거나 기술지주회사를 통해 직접 상용하도록 지원했다. 이를 통해 2013년 약 30억원의 수익을 창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글로벌 지식재산 전문기업인 윕스(WIPS)가 연구중심병원의 특허 현실을 정량분석결과를 중심으로 분석했는데 특허를 보유한 병원은 극소수였다. 서울대병원의 의료특허 건수가 1122건으로 연구중심병원 중 가장 높은 점유율(35%)을 차지했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656건(21%), 고려대병원(구로, 안암)이 571건(18%)으로 3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경북대병원 392건(12%), 분당차병원 129건(4%), 아주대병원 112건(4%)순이었다. 병원의 선두주자라 불리는 삼성서울병원은 97건(3%)으로 7위, 서울아산병원이 35건(1%)으로 9위에 그쳤다.
지난 6월 열린 '병원의 성공적인 미래, 빅데이터와 특허에서 찾다' 포럼에서 윕스 전략사업실 김종택 상무는 연구중심병원들의 특허 출원의 80% 이상이 일부기관에 편중돼 있고, 대다수가 특허 생산성이 저조한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김 상무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상위 4개 기관의 특허출원 점유율이 84%인데 이러한 상황은 외국도 마찬가지""라며 ""기술분야별 특허 경쟁력의 기관간 편차가 심각한 수준이다. 일부 기관의 경쟁력이 전체 기술의 수준을 결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쿠키뉴스 제휴사 /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sunjaepark@mo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