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야구를 한 편의 드라마로 제작하면 어느 팀을 소재로 삼는 게 좋을까요. 넥센 히어로즈가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합니다.
존폐 위기에서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넥센이 겪은 수많은 굴곡만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죠. 스포츠 드라마가 줄 수 있는 감동적 요소를 모두 담고 있는 셈입니다. 이 만한 소재를 찾는 것도 쉽지 않겠죠.
하지만 넥센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특집 프로그램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넥센이 소재로 부적합해서? 스타플레이어와 팬이 다른 구단보다 부족해서? 아닙니다. 주연배우 캐스팅을 잘못했다는 겁니다.
17일 SNS에는 16일 밤 8시 KBS 1TV 특집 다큐멘터리 ‘넥센, 꼴지에서 영웅으로’와 15일 밤 8시 SBS ‘8뉴스’의 보도 내용을 놓고 야구팬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장석(48) 구단주만 조명했다는 겁니다. SNS에는 “이장석 특집인가” “이장석 위인전인가” “지금까지 넥센이 아닌 이장석의 성공시대였습니다” “수신료의 가치를 이장석에게 전합니다”라는 조롱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선수나 관중보다 구단주의 비중을 높게 다뤘다는 의견이죠.
넥센에서 이 구단주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분명한 사실이죠. 넥센은 삼미 슈퍼스타즈와 현대 유니콘스의 계보를 이어 2008년 창단한 제8구단입니다. 당시 5000만원을 들고 히어로즈라는 이름의 구단을 설립한 인물이 인수합병 전문가인 이 구단주입니다.
히어로즈는 삼미와 현대가 겪었던 굴곡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담배회사(우리)와 연고지역(서울)으로 명칭을 바꾸는 혼란이 있었습니다. 2012년 타이어회사인 넥센의 인수로 현재의 명칭을 완성했습니다. 우승보다는 생존이 절실했던 넥센입니다. 이 구단주의 열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넥센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넥센의 올 시즌 돌풍을 이 구단주 한 명을 놓고 설명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나머지 8개 구단의 명장들 사이에서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일궈낸 염경엽(46) 감독의 지도력과 열악한 환경을 극복한 박병호(28), 강정호(27), 서건창(25) 등 스타플레이어들의 헌신적 플레이, 이들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은 관중들은 넥센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끈 주인공들입니다.
야구팬들은 넥센 특집 방송을 앞두고 선수들의 눈물과 땀방울을 기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브라운관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 인물은 이 구단주였죠. 야구팬들의 입장에서는 이 구단주가 생색을 내는 듯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하는 듯 보이기도 했을 겁니다. 냉랭한 반응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이 구단주는 지난 14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들려주기 위해서는 주연배우를 약자로 캐스팅해야 할 겁니다. 구단 조직도의 맨 위에 있는 구단주보다는 관중석의 한 자리를 채운 팬이 더 어울리겠죠.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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