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권남영 기자] 한국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기억하는지. 그들의 치열했던 1093일을 그린 영화가 나왔다. 다큐멘터리 영화 ‘파울볼’에는 김성근 감독과 고양 원더스 선수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내용은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2011년 9월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창단한 고양 원더스는 불과 3년 만인 지난해 9월 갑작스레 해체됐다. 물론 해체가 쉽게 결정된 건 아니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 아쉽게도 영화는 이 과정에 대해선 자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 부분을 꼬집어주길 바란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획단계부터 르포 형식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자했다”는 게 조정래·김보경 감독의 말이다. 영화는 감독의 의도를 충실히 수행했다. ‘오합지졸’ 선수들이 ‘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을 만나 성장해가는 매일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고양 원더스 선수들 면면을 살펴보면 참 다양하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선수들은 물론 전직 택배 기사, 대리 운전기사, 헬스 트레이너까지…. 신인 선발 지명을 받지 못하거나 구단에서 방출된 선수들이 재기를 꿈꾸며 모였다.
물론 처음부터 이들이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단련된 상태는 아니었다. ‘뛰어서 산 오르기’ 훈련을 하던 어떤 선수는 중턱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내쉬기 바쁘다. 이들에겐 양 발을 재빠르게 교차하는 순발력 훈련도 쉽지 않다. 스텝이 꼬여버리기 일수다. 배트 스윙은 더 큰 문제다. 자세가 잡혀 있지 않고 다들 제멋대로다.
이런 모습들은 검정 선글라스를 낀 ‘잠자리 눈’ 김성근 감독 시야에 다 들어온다. 김 감독은 답답한 듯 꾸짖는 말을 툭툭 내뱉다가도 이내 곁에 다가가 선수 한 명 한 명을 지도한다. 패배에 익숙했던 선수들은 감독과 코치들의 애정 어린 지도 아래 점점 달라져간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김 감독 인터뷰다. 카메라 건너 들려오는 영화감독의 질문에 김 감독은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선수들이) 그 자리에서 제자리걸음하는 게 제일 안타깝다”며 인상을 짓던 김 감독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며 다시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장르 영화지만 재치 있는 편집으로 곳곳에서 웃음을 준다. 감독들의 깨알 같은 유머감각이 돋보인다. 그러나 팀 해체가 선언되고 난 뒤 감독과 선수들 모습은 진한 먹먹함을 안긴다. 절망적인 상황을 담백하게 담아낸 연출이 탁월했다.
‘파울볼’이라는 제목을 곱씹어보면 영화가 주는 의미가 더 깊이 느껴진다. 아직 ‘아웃’이 아닌 상황, 다시 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어쩌면 우리 삶은 ‘파울’의 연속이 아닐까. 기자간담회에서 김 감독이 했던 말처럼 이 영화엔 인생이 있다.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