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임권택-안성기의 ‘화장’…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

[쿡리뷰] 임권택-안성기의 ‘화장’…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

기사승인 2015-03-23 00:07:55
사진=영화

[쿠키뉴스=권남영 기자] 이름 석 자만으로 충분한 거장. 임권택(79) 감독이 새 작품을 내놨다. 무려 102번째다. 기존 작품들과는 좀 다른 영화이고자 노력했다는 게 감독의 말이다. 어쩌면 도전이었을지 모를 영화 ‘화장’은 “역시 임권택”이라는 감탄을 절로 자아냈다.

더구나 배우 안성기(63)가 주연했다. 아무나 얻기 힘든 ‘국민 배우’ 수식어가 붙는 그다. 임권택 감독과는 작품에서 벌써 8번째 만났다. 두 사람의 호흡과 시너지는 더 말해 무엇할까. 이 깊고 진한 여운을 글로 어떻게 옮겨야 할지 망설여진다.

영화는 검은 옷을 차려 입은 채 새하얀 상여를 이고 가는 한 무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4년째 암으로 투병하던 아내(김호정)의 장례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극명하게 대비한 장면. 임 감독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가게 돼있다는 걸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느낌으로 첫 그림에서 인상 깊게 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무게감은 영화를 보는 내내 고스란히 유지된다.


아내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오상무(안성기)의 눈길은 자꾸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추은주(김규리)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화장품 대기업 중역인 오상무의 부하직원으로 입사했을 때부터 추은주는 그의 온 신경을 끌었다. 밝고 당당하고 생기가 넘쳤다. 병원에서 하루하루 죽어가는 아내의 모습과 참 많이 달랐다.

오상무가 갖는 남자로서의 욕망은 전립선 비대증이라는 병으로 상징된다. 만성적인 단계까지 진행된 이 병 때문에 오상무의 방광은 늘 꽉 차있다. 오줌을 빼내려면 병원에 가거나 오줌주머니를 차야한다. 남몰래 바지 속에 감춰뒀다 몰래 비워내는 오줌주머니. 이는 어쩌면 자신의 의지로 끊어내지 못하는 사내로서의 욕구로 보인다.


젊고 예쁜 여인에게 흔들리면서도 오상무는 결코 아내를 놓지 않는다. 병간호를 위해 매일 병원에서 출퇴근하며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감독은 오상무의 모습을 통해 “이런 것도 아름답지 않느냐”는 질문을 조심스레 건넨다. 유혹에 빠져드는 속마음이 부끄러워 드러내지 못하는, 살면서 어쩌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이런 일들을 사실감 있게 표현하고자 했다는 게 임 감독의 설명이다.

‘화장’은 김훈 작가의 이상문학상(2004) 수상작인 동명의 소설을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임 감독은 “김훈 선생의 힘차고 박진감 넘치는 문장을 어떻게 영상으로 옮길 것인지가 대단히 큰 과제였다”고 털어놨다. 100편이 넘는 영화를 찍은 그이지만 여전히 관객들에게 어떻게 닿을지는 가늠치 못하겠단다. “관객들에게 영화를 어떻게 봤느냐는 질문을 드리고 싶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숙여진다.


검증된 시나리오와 탁월한 연출. 여기에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까지 더해졌다. 특히 깡마른 몸으로 뇌종양 환자를 표현한 김호정의 열연이 놀랍다. 작품을 위해 삭발을 하고 음부 노출까지 감수한 그의 용기는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기사에 언급한 것은 극히 일부다. 영화 곳곳에 배치된 상징들을 유추해보는 쾌감이 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치밀하고도 깊다.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다음달 9일 개봉.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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