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윤형] 메르스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방관한 정부

[기자의 눈/장윤형] 메르스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방관한 정부

기사승인 2015-06-19 16:37:55

1941년 1월 미국 32대 대통령인 루즈벨트는 연두교서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가 4가지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첫 번째가 언론과 의사 표현의 자유, 두 번째가 신앙의 자유, 세 번째가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바로 네 번째가 ‘공포로부터의 자유’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 중 ‘공포로부터의 자유’도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

미국 대통령의 말은 정부가 국민들을 ‘공포로부터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인간은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더 나아가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러한 권리가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고 여길 때 국민들은 분노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이 자유를 제대로 지키고 있을까. 최근 메르스 사태를 보면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병원 내 감염이 지역 감염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적다는 점, 공기로 바이러스가 전파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의료계와 정부의 해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정보를 받지 못한 시민들이 보이지 않는 공포인 '메르스'와 스스로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메르스로부터 보이지 않는 공포에 국민들은 전염되고 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메르스의 경우 더더욱 국가와 대통령이 나서 국민들에게 투명한 정보 공개와 안전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항상 한발 늦게 대응했다.

우선 메르스 발생 초기에 병원명 공개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는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르스가 확산되고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자 뒤늦게서야 병원명을 공개했다. 정부의 비밀주의는 메르스를 더 확산시키는 촉발제였다. 이로써 국민들의 공포는 더욱 커져갔다.

또한 메르스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에도 정부는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지난 1일 첫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은 메르스 공포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2일 박근혜 대통령은 전남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했다. 이날은 3차 감염자도 처음 나온 날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유럽에 출장을 가기도 했다. 공포는 커지는데 정부는 말로만 안심시켰지, 사실상 방관 상태였다.

이후 여론의 뭇매를 맞자 정부는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박 대통령이 지난 6월 4일 국립의료원 첫 행보를 시작으로, 14일 방미일정을 취소했다. 이후 메르스 이후 타격을 받은 상인들을 위한답시고 동대문 상가를 방문해 원피스와 머리핀을 구매했다. 국민들은 불안에 떠는데 정부는 경제가 위축될 것을 염려해, 죽음과 사투하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격려하는 대신 원피스를 사러 동대문에 갔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정부가 존재하기는 하느냐. 지금 중요한 것은 창조경제가 아니라 실제적인 대책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한 발언은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한 학교에 방문해 학생들에게 “중동식 독감 메르스 같은 것은 무서워 할 필요 없다”는 발언을 했다. 이는 정부의 무사안일주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발언이다. 메르스가 확산돼 사망자와 확진자가 속출함에도 불구하고, 메르스가 독감 수준이니 안심하란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자가 1명이 추가로 확인돼 오늘(19일)을 기준으로 166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사망자가 24명에 달하고 있다.

메르스에 감염된 남편을 돌보다 바이러스 감염된 아내, 그리고 두 부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다 눈을 감았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내이자 자식이었을 사람들이 연일 사망했다는 소식은 국민들에게 충격 그 이상이다. 메르스로 죽어가는 아내의 마지막을 보지 못하고 ‘눈물의 편지’를 간호사에게 전해 읽어준 사연.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보지 못하고 24시간 내에 화장을 해야 하는 절망감. 이들의 마음은 누가 위로를 해줘야 할까.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정부가 ‘공포’로부터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칼로 찌르는 것만이 살인인가, 남의 집 불 구경하듯 안일한 태도로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는 살인보다 더 해악이다. 이제 보이지 않는 공포로부터 우리가 살아내기 위해서는 ‘마스크’와 ‘손세정제’만 무장한 채로, 일터로 또한 학교로 가야한다. 정부가 지켜주지 못해 스스로 감내하는 국민들. 이제 정부는 어떻게든 이번 사안이 수습되고 나서 책임을 져야 한다.
vitamin@kukimedia.co.kr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
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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