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풀리지 않는 ‘천경자 미스테리’… 두 달 전 美서 별세, 극비 장례, 서울 온 유골함, 안치된 장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천경자 미스테리’… 두 달 전 美서 별세, 극비 장례, 서울 온 유골함, 안치된 장소?

기사승인 2015-10-23 00:10:57

[쿠키뉴스=조현우 기자] 천경자(91) 화백이 두 달 전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밝혀졌다고 22일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천 화백은 그동안 국내 미술계와 연락이 닿지 않아 생사 여부 논란이 일었다.

1998년부터 천 화백과 뉴욕에서 함께 살며 그를 간호해온 맏딸 이혜선(70)씨는 “어머니가 2003년 7월 2일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줄곧 병석에 계셨는데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셨다”며 “지난 8월 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이씨는 “어머니 시신은 화장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고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198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93점을 자식처럼 아끼셨다”며 “미국에서 장례를 치른 뒤 8월 중순 서울시 측에 협조를 구해 어머니 유골함을 들고 그림이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상설전시실과 수장고를 한 바퀴 돌고 보내드렸다”고 덧붙였다.

사망 사실을 늦게 알린 것에 대해선 “그간 경황이 없었고 어머니나 나나 생사 논란, 위작 논란 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해서 말하지 않았다”며 “서류상 정리할 것들이 있어 잠시 한국에 들어온 차에 고심 끝에 밝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중요한 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고, 장소는 언젠가 알려 주겠다”고 천 화백의 유골이 안치된 장소에 대해선 함구했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연합뉴스에 “이씨가 몇 달 전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며 “개인적인 일이라 본인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천 화백은 1924년 전남 고흥 출생으로 전남여고를 졸업하고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미술학을 전공했다. 해방 이후 광주 조선대학교 미대 교수를 시작으로 1970년대까지 홍대 미대 동양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0년대에는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83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1960~1980년대 자신의 화풍을 개척한 스타 화가였던 천 화백은 여인의 한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의 한국화로 그려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다. 1991년 ‘미인도’를 둘러싸고 일어난 위작 시비로 인해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다.

국내 미술계에선 그동안 천 화백이 이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은 천 화백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잠정 중단했고 이씨는 이에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당시 예술원은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 화백 의료 기록 등을 요구했으나 이씨는 예술원의 요구가 천 화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현우 기자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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