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땅콩의 어떻게 들었어] 하루에도 몇 십 개의 앨범이 쏟아진다. 대한민국 가요계는 바야흐로 앨범 범람 시대. 그 중 화제가 되는 앨범들을 듣고 리뷰해 본다. 12월 초순, 수많은 윈터송으로 치열한 가요 차트에서 싸이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그룹 엑소, 정말 잘 하는 지코, 태티서가 이번 리뷰의 주인공이다.
지코 ‘갤러리(Gallery)’ 2015.12.07 발매 : 잘하는 사람이 “나 잘 해!”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면 얄미운 것이 대한민국의 유구하고도 못된 정서다. 같은 맥락에서 지코가 참 얄미울 법도 한데 얄밉지 않은 건 정말로 잘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시한 ‘터프 쿠키’ 이후 계속해서 “나 엄청 잘 해”가 지코의 입버릇이자 트레이드 슬로건이 됐지만 그 내용을 노래하는 방식과 비트, 표현은 모두 다르다. 그리고 잘 한다.
멤버의 자체 프로듀싱과 작곡이 한국 아이돌 그룹의 트렌드가 된지는 오래됐지만 힙합 장르 기반의 프로듀서 중 지코는 독보적이다. 타이틀곡의 경우 그 흔한 피처링도 하나 없이 혼자 다 하고 있지만 부족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잘한다고 할 필요가 없는 앨범이다. 타고난 실력도 출중하지만 노력까지 하니 못할 수가 없다. 차트에서 흥하는 ‘유레카’ 외에도 3번 트랙 ‘오만과 편견’은 지코의 넓고 깊은 스펙트럼을 단번에 보여준다. 같은 사람이 다 썼다기엔 극단적으로 다르고, 둘 다 퀄리티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지코의 나이다. 1992년생. 1992년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태티서 ‘디어 산타(Dear Santa)’ 2015.12.04 발매 SM 편곡의 특징이자 장점은 한 곡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자연스레 변주한다는 것이다. ‘디어 산타’는 팝 장르를 기반으로 도입부에서는 발라드를, 간주에서는 스윙 솔로를 보여주며 한 곡만으로 산타가 들고 온 자루 속 선물 세트 같은 느낌을 준다. 태티서는 대체로 브라스를 타이틀곡에서 높은 빈도로 사용하는 편이지만 ‘디어 산타’의 경우 타이틀보다는 2번 트랙 ‘아이 라이크 더 웨이(I Like The Way)’가 시작부터 스트링과 브라스의 조합으로 귀를 확 잡아끈다.
앨범명에서부터 산타를 언급한 만큼 겨울 시즌을 노린 특수한 앨범이고, ‘디어 산타’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충분히 활용해 겨울 앨범답게 따뜻하고 발랄하다. 그러나 태티서라는 아티스트 그룹의 측면으로 보자면 ‘트윙클’ 이후 집중도와 밀도 높은 곡이 배출되지 않는 것은 아쉽다.
엑소 ‘싱 포 유(Sing For You)’ 2015.12.10발매 ‘러브 미 라잇(Love Me Right)’ 때도 그랬지만 엑소는 계절감을 직접적으로 가사에 드러내지 않아도 계절감이 풍부한 앨범을 내는 그룹이다.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곡 ‘싱 포 유’의 경우 어쿠스틱 기타 연주 위에 멤버들의 목소리만 얹어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어쿠스틱 기타를 통한 빈틈없는 편곡이 돋보이며, 이는 포근한 계절감으로 직결된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승부하기는 아무래도 연륜이 아직은 부족하다. 물론 그 와중에 눈에 띄는 것은 멤버 백현의 발전이다.
‘불공평해’의 경우 이번 앨범 수록곡 중 가장 엑소의 본래 컬러와 비슷하다. 사랑스럽고 밝은 댄스곡이고 편곡도 힘을 냈다. ‘불공평해’가 돋보이는 이유는 영리한 배치 감각 덕분이다. 원래 엑소가 하던 곡을 1번에 배치하고 2번에 ‘싱 포 유’를 배치한 것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엑소가 본래 하던 것만 잘 하는게 아니라는 인상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미니앨범 치고는 탄탄한 구성도 돋보인다. 아이돌 그룹 내 멤버를 프로듀서로 전면에 내세우는 최근의 유행은 엑소에는 없는 경향인데, SM A&R팀이 이 정도로 애를 쓰고 있는 덕분이다. 굳이 멤버의 (그룹에 따라서는 도박에 가까울 수도 있는)음악적 역량을 내세워 어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김땅콩의 어떻게 들었어? : 다수의 기획사, 공연 A&R팀을 거쳐 작곡을 업으로 삼고 있는 김땅콩(예명, 31)이 열흘마다 갱신되는 가요계 최신 앨범을 리뷰합니다. 정리· 이은지 기자 rickonb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