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1년에 공연 몇 번이나 보시나요? 주변에 물어보니 영화는 자주 보는 편인데 연극이나 콘서트는 1년에 한두 번이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가격대가 좀 센 편이라 연말에 날 잡아 보는 경우가 많네요.
자, 그렇게 연말 공연 하나를 예매했습니다. 예매 전쟁까지는 아니었지만 좋은 자리에 앉으려고 애를 좀 썼습니다. 함께 갈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을 위해서였죠. 공연 당일이 되자 마음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공연장 가는 최단거리를 검색하며 퇴근 시간만 기다립니다. 일행과 서로를 재촉하며 드디어 공연장에 도착, 시작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갑자기 공연이 취소됐습니다.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요. 평소 같으면 공연장이 아주 난리가 났겠죠. 환불 요청은 기본이고 여기저기 욕설과 고성이 난무했을 겁니다. 흥분한 관객들 간의 말다툼도 그려지네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합니다. 29일 마술사 최현우의 매직 콘서트 현장이 그랬습니다.
최현우는 지난달부터 서울 방이동 우리금융아트홀에서 매직 콘서트 ‘더 셜록’을 공연 중입니다. 29일은 오후 8시 공연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이날 티켓은 90% 가량이 팔려 관객 800여명이 공연을 볼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연 10분 전까지도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의 항의가 나올 찰나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최현우입니다. 로비에서 기다려주시는 관객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기계의 이상으로 객석 입장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는 말이었죠.
그러나 8시가 지나도 공연장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의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그때 “마술사 최현우입니다. 저는 지금 로비 5번 게이트 앞에 나와 있습니다”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관객들은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그 곳에는 공연 정장을 입고 헤어스타일까지 갖춘 최현우가 있었습니다.
최현우는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객석을 비추는 조명에 전력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잡아보려 계속 시도했으나 전기가 들어가지 않아 불가피하게 공연을 취소하게 됐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럽습니다”라며 “보상 방법을 합의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현우가 보이지 않는 관객들이 “최현우가 여기 있어?” “여기 있다고?” 하자 최현우는 “죄송합니다. 제가 키가 작아서”라며 테이블 위로 올라가 90도로 절을 하며 사과했습니다.
그러면서 최현우는 직접 로비에 나와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공연취소 소식과 취소 이유, 보상책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되묻는 관객들에게 사과를 하고 또 했습니다. 표값 100% 환불과 다른 날 초대, 혹은 110% 환불을 보상 방법으로 제시했고, 주차 역시 무료로 조치했습니다. 포토존에서 원하는 관객 모두와 일일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로비에선 묘한 풍경이 연출됐습니다. 관객들이 오히려 “괜찮아요” “다음에 꼭 올게요” “힘내세요”라며 최현우를 위로한 것입니다.
네티즌 A씨는 이 글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고 SNS에선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조횟수가 30만에 육박할 정도입니다.
A씨는 “스케줄 허탕 치고 시간 버리고, 귀한 아들 딸 길바닥에 고생시킨 덕분에 짜증과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작정하고 매표소 쪽으로 돌진하여 고성을 내려했던 몇몇 사람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화낼 이유가 없게 됐다. 아주 자세하고 솔직한 설명, 충분한 사과, 명료한 보상방법”이라며 “태프들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에게 일대일로 붙어 신속하게 설명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확실한 자세로 사과하는데, 변명이 아닌 그저 상황 설명으로 느껴져 화를 낼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이날 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가족 단위로 1000명에 가까웠는데 그 로비에서는 싸움 한 번 없고, 고성도 없었다”면서 “최현우를 비롯해 스태프들이 관객에게 눈을 맞추는 모습이 어색했던 것 같다. 로비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어린 아이들에게 ‘기다리느라 다리 많이 아팠지’ 묻는 스태프, 보상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스태프, 애매한 케이스의 관객은 직접 연락처와 이름을 기록하고 ‘자신이 책임지고 연락하겠다’며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는 매니저 등이 어색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배우 몇 마디 통한 방패 사과, 항의한 사람만 조치하는 눈가리고아웅식 대처, 이슈화 되어야 겨우 형식적인 글 몇 줄 올리는 울며겨자먹기식 SNS 공지, 그 공지 조차도 거만한 뉘앙스거나 ‘내가 잘못한 건 아니고 관심 준 관객 감사함’식의 동문서답형 소설”이라며 “수 년간 맨날 이런거 속에서 이딴 대접 받고 살다보니 난 오늘 이 상황에서 너무나 묘한 기분과 어색함을 느꼈던 거 같다. 사건이 터졌을 때, 관객을 ‘적’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피해 받은 관객’으로 봐 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공연도 안 봤는데, 마치 공연 본 것 처럼 돌아오는 길에 묘한 감동이 남았고 진짜 공연도 안봤는데 관객이 된 느낌이었다”는 A씨 표현에 인터넷에선 최현우를 극찬하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최현우가 정말 마술을 부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