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우선 지난해 롯데엔터테인먼트(이하 롯데) 투자·배급한 한국영화 성적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위험한 상견례 2’(47만2695명) ‘간신’(110만246명)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35만6342명) ‘협녀, 칼의 기억’(43만1312명) ‘기적의 피아노’(8567명) ‘서부전선’(60만9105명) ‘특종: 량첸살인기’(61만5714명) ‘조선마술사’(62만7519명)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국제시장’ ‘암살’ ‘베테랑’ 등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3편이 나왔는데 롯데가 배급한 영화는 간신히 한 편만 100만을 넘었습니다. 국내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가 가장 못하는 것이 야구와 영화라는 조롱이 나올 법도 합니다.
롯데와 경쟁하는 투자·배급사와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CJ E&M은 14편의 한국영화를 배급해 4000만명(40%)을 동원, 관객 점유율 1위를 차지했습니다. 매출은 무려 3124억원에 달했습니다. 8편을 배급한 쇼박스는 3200만명(32%)을 동원해 2위입니다. 3위는 1464만명(14%)을 동원한 뉴(NEW)입니다. 롯데는 7편을 배급했는데도 415만명, 관객 점유율 4%에 그쳤습니다. 롯데쇼핑 계열사인 극장 체인 롯데시네마를 보유해 자가사 배급한 영화를 전략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영화계 안팎에선 ‘전략도 없고 반성도 없다’ ‘인적 쇄신은 없고 자리 지키기에만 연연’ ‘자본력만으로 덤빈 결과’ ‘콘텐츠 제작 역량에서 뒤처진다’ ‘조직 문화의 경직성’ ‘1000만 영화 하나 없다’ 등 쓴소리가 잇따라 나왔습니다.
물론 흥행은 하늘만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측이 빗나가기 마련입니다. 시나리오와 기획은 좋았지만 연출의 괴리감으로 대중성을 놓쳤을 수 있고, 괜찮은 작품이 나왔지만 마케팅 부족으로 분루를 삼켰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 수준급 궤도였지만 동기간대 개봉작들이 너무 우월해 관객의 선택을 아깝게 놓쳤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 롯데의 경우 한국영화는 부진했지만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 외국영화 배급은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간신’ 이후 6연패를 당하는 동안 롯데가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은 롯데 자이언츠 불펜 못지않았습니다. 소위 대작의 경우 경쟁작을 피하기 위해 한 발 늦게 개봉하는 경우가 잦아 시장에서 손 쓸 도리도 없이 그대로 당했고, 실험적인 영화는 배급 시기가 애매해 묻히기 일쑤였습니다. 나쁜 타이밍을 역전할 홍보 전략도 부재했습니다. CJ가 CGV를 통해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이나 씨네라이브러리 등으로 자사 이미지 제고에 나선 것과도 대비됩니다.
이를 갈고 있는 롯데는 올해 ‘로봇, 소리’로 반전의 시동을 겁니다. 10년 전 실종된 딸을 로봇과 함께 찾아나서는 설정 자체가 한국형 SF 판타지의 가능성을 보여준 수작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신파물이기는 하지만 부성애와 우정을 자연스럽게 교차해 따뜻한 힐링 무비로 손색이 없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배우 이성민의 원톱이 인상적이라는 극찬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주가가 떨어져도 매도가 아니라 매수 의견으로 일관하는 증권사의 허무한 리포트처럼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압니다. ‘로봇, 소리’와 롯데의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