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사가도 평론가도 아니다. 어찌어찌하여 20여년 이상 정부에서 문화정책과 행정에 관한 일을 하게 되었고, 30년 전 쯤 예술경영이라는 당시로서는 신학문을 유학하고 정부에 복귀해 이후 미술과는 오랜 친구가 되었다. 나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예술을 통해 우리의 삶과 사회가 기름져지느냐에 있다. 동시에 예술세계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선한 돌기를 지속하느냐에 있다. 두 번째 논제는 여기서 다룰 지면이 없을 것 같다. 나는 첫 번째 논제와 관련하여 사람과 사회에 대한 선한 매개로서의 예술의 역할에 대해 주목한다.
그런 와중에 화가 유휴열과 그의 작품을 가까이서 봐 온 것은 분명 축복이다. 나는 그와 그의 작품을 이래서 좋아한다.
첫째, 그의 작품 속에는 풋풋하고 넉넉한 사람 냄새가 담겨 있다. 사람이 없는 예술은 이미 예술일 수 없다는 게 나의 좁은 소견이다. 초창기의 작품에서부터 최근의 알루미늄 작품들에 이르기 까지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이라는 인간의 감정을 초지일관 이처럼 정감 어리게 표현한 작가가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나는 그의 작품 속에서 소재와 매체, 때론 양식을 불문하고 항상 내면 깊숙이 똬리 틀고 있는 구수한 사람 냄새를 맡는다.
둘째, 그의 작품은 그의 삶 자체이다. 흔히 작가의 삶과 작품은 별개로 여겨지기도 한다. 때론 그것이 예술가의 특권인양 하여 부럽기도 한 적이 있었다. 그의 작품은 그의 삶과 인격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만큼 정직하다.
셋째, 그는 토속적인 소재를 현대 미술에 기막히게 녹이는 재주가 있다. 사람은 자기가 나고 자란 터전에 대한 DNA가 있다. 그걸 문화라고 한다면 가장 원초적인 그 문화를 다룰 때 진품이 나온다. 유휴열은 자기가 가장 잘 알고, 가장 가슴 절절하게 느끼는 것을 화폭에 담고 만들어 낸다. 또 기본적인 그리기나 만드는 재주 없이도 예술가로 대접받는 요즘이지만 예술(art)의 원래 의미는 기술이었다. 그는 가장 자기다운 콘텐츠를 가장 자기다운 재료와 기법으로 만들 줄 아는 쟁이다.
넷째, 그는 새로운 예술을 향한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 용기 있는 도전자다. 초기 작품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용과 형식에서 간단치 않은 변화를 볼 수 있다. 내용은 더욱 익어지고, 형식은 요란치 않으면서도 지치지 않고 변화한다.
다섯째, 그는 묵묵히 그림에만 전념하는 순수한 예술가다. 거의 반평생을 한 눈 팔지 않고 화가의 길을 걸어왔다. 파리와 뉴욕에서 체류한 적도 있지만 전국 유명세를 타는데 불리하다면 불리하다할 지방에서 바보처럼 캔버스와 재료들과 씨름하며 오직 미술작업만을 해왔다. 그는 가짜가 진짜 같은 예술계에서 진정한 예술가다.
조규봉 기자 ck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