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퍼주기’에 급급한 정부의 ‘보험약가 개선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약가 개선안이 환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제약사를 위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은 공동 성명서를 통해 “우리 가입자단체들은 정부가 행정예고한 ‘보험 약가제도 개선안’을 폐기하고 사회적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건정심’의 심의의결 과정을 통해 ‘보험 약가제도 개선안’ 추진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정부가 보험 약가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건강보험 재정의 추가 부담이나 절감 효과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하지만 ‘건정심’ 안건자료에는 ‘글로벌 혁신신약’의 약가를 우대하는 내용들만 나와 있고 건강보험 재정의 추가 부담이나 절감 효과 관련 분석 자료는 없다”며 “건정심에서의 심의의결 과정에 가입자들을 그저 ‘들러리’로 세우는 것에 다름 아니며, 심각한 절차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놓은 ‘보험 약가제도 개선안’에는 국내 보건의료 기여도가 높고 임상적 유용성을 개선한 이른바 ‘글로벌 혁신신약’에 대해서는 비용효과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대체약제 최고가의 10%를 가산하고 비용효과성을 입증하면 혁신가치를 경제성평가에 반영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는 정부가 글로벌 신약 개발 잠재력은 있으나 신약개발 활성화를 위해서는 신약의 가치를 반영한 적절한 약가 결정이 필요하다는 국내 제약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파격적인 약가우대정책을 마련한 것이다. 현 정부 들어서 지속돼온 신약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요건 완화 시도의 연장선상이다.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받은 ‘글로벌 혁신신약’이 비용효과성 입증이 곤란한 희귀질환치료제·항암제인 경우 경제성평가 면제요건에 해당하면 유사약제 A7(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일본, 영국, 스위스) 조정최저가 수준으로 약가를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번 약가제도 개선안에 따르면 ‘글로벌 혁신신약’으로 인정되면 의약품 등재 후 사용범위 확대, 사용량 증가 등으로 약가인하 사유가 발생해도 특허기간까지 약가인하를 유예하고 인하 분만큼 환급제를 실시하고, 건강보험 등재 시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적정성 평가기간을 120일에서 100일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약가 협상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단축하겠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그러나 이들 단체는 보건복지부가 국민들의 동의 없이 ‘제약사 퍼주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건보 재정이 2011년 이후 5년 연속 당기흑자를 기록하면서 누적 적립금이 19조에 이른다. 이것은 4대 중증질환은 77%대, 전체 질환은 60%대에 머물러 있는 건강보험 보장율 확대 등에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할 소중한 재원”이라며 “이것을 제약사의 이익을 위해 퍼주기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약제급여의 대원칙은 ‘가치’를 반영한 급여결정이다. 즉, 신약에 대해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약에 비해 어느 정도 효과가 개선된 것인지(치료적 가치)와 그 비용은 적절한지(경제적 가치)를 평가해 급여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특히 ‘비용효과성’이라는 것은 기존 약에 비해 신약의 효과가 더 뛰어난 것이 아니라면 신약의 가격이 기존 약의 가격보다 더 높아서는 안되며, 효과가 개선된 것이라면 개선된 효과 대비 투입되는 비용이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이어야 한다. 물론 그동안 질병의 중증도가 높고, 대체 약제가 없는 경우에는 환자의 신약 접근성 보장 차원에서 비용효과성 판단기준을 다소 완화한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가치에 따른 급여 결정’이라는 대원칙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안 대표는 “정부의 이번 ‘보험 약가제도 개선안’은 ‘가치에 따른 급여 결정’이라는 대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며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올해 3월에 마련된 ‘글로벌 혁신신약’의 요건에 비해 오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에 보고된 요건은 대폭 완화돼 국내 제약사 뿐 아니라 다국적 제약사도 약가우대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정부의 ‘보험 약가제도 개선안’에는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받은 신약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수행한 경우 ▲최초허가국인 우리나라 이외 최소 1개 국가 이상에서 허가 또는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경우 ▲혁신형 제약기업이 개발한 경우 등 4가지를 모두 충족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건이 일부 완화됐다는 게 이들 단체의 설명이다. 완화된 개선안을 살펴보면 우선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받은 신약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생산 또는 사회적 기여도 등을 고해여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인정한 경우로 완화됐다. 또한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수행한 경우 이외에 해당 품목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국내를 포함하여 실시한 경우도 포함시켰다.
아울러 다국적 제약사가 충족하기 어려운 최초허가국인 우리나라 이외 최소 1개 국가 이상에서 허가 또는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요건은 아예 삭제되고 혁신형 제약기업이 개발하지 않았더라도 국내 제약사와 외자사 간 공동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급평위에서 인정한 기업이 개발한 경우도 포함하도록 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가 혁신신약 약가우대정책으로 주장하는 이 안은 모든 제약사를 대상으로 하는 약가우대정책으로 변질돼 있다”며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를 10% 이상 가산한다는 것은 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가산된 금액만큼의 경제적 부담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의 이윤을 위해 건강보험료를 지불하는 국민과 의료비를 지불하는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보험 약가제도 개선안대로 시행되면 ‘글로벌 혁신신약’의 경우 최소 10% 이상 약가인상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 이들 단체는 “혁신신약 우대안을 내세울 경우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의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주요 건강보험 정책에 대해 심의하는 건정심에서는 당연히 보험 약가제도 개선안을 의결사항으로 심의해야 한다”며 보험약가 개선안을 폐지를 촉구했다.
장윤형 기자 newsroo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