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장윤형 기자]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가치를 키워가는 ‘가치 사슬(Value Chain)’이 한국에서 온전히 돌아갈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제품화 최종 단계를 책임지는 제약기업의 역량과 성공경험의 축적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녹십자 박두홍 종합연구소장(부사장)은 ‘신약강국이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묻자 이같이 밝혔다. 박 소장은 “신약개발에는 막대한 시간과 자금이 투입되고, 후보물질 도출부터 CMC 개발, 비임상, 임상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제품화가 완성되는 프로세스”라며 “이 과정이 성공하기까지는 어느 한 연구자의 역량만으로 부족하며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함께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를 만난 곳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녹십자 중앙연구소다. 연면적 2만8330㎡(8600평) 규모의 이곳은 우리나라 백신 및 혈액제제 분야 연구개발(R&D)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회사 창립후 50여년간 연구자들은 이곳에서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며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녹십자는 B형간염 백신을 개발하고, 최근에는 국산 신약인 헌터증후군 치료제를 개발했다.
박 소장은 녹십자의 신약 후보 물질 연구를 담당하는 목암연구소의 수석연구원과 소장을 거쳐, 지난 2012년 말부터 녹십자 종합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회사에서 23여년을 연구개발에만 주력해왔다. 목암연구소와 종합연구소가 서로 공조하며 신약 개발 및 임상에서 좋은 성과물을 내고 있다. 지난 20년 간 국내 연구개발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박 소장은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며 “당시만 해도 제네릭 중심의 제약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녹십자를 포함해 한미약품 등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해 성과를 내는 단계에 왔다”고 술회했다.
박두홍 소장은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약을 만들어도 글로벌 시장에서 안 팔리면 소용이 없다. 차별화 된 의약품을 개발해야 한다”며 “신약개발에는 ‘선택과 집중’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사는 혈액제제와 백신 분야에서 집중을 해 온 결과, 경쟁력 있는 제품들을 내놓았다. 앞으로 희귀질환치료제와 항암제 분야에서도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주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녹십자의 주요 파이프라인은 백신, 바이오의약품 합성신약 등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녹십자는 40여년 동안 백신과 혈액제제 연구개발에 집중해 왔다. 인플루엔자 4가 예방백신(유정란), 조류인플루엔자A(H5N1) 백신, 수두백신,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백신, 탄저균 백신 등 다양한 백신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혈액제제 분야에서도 기대가 되는 제품도 있다. 지난 2년 간 미국에서 임상을 진행한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이하 IVIG)’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가 임박했다.
눈에 띄는 분야는 ‘바이오의약품’ 영역이다. 녹십자는 희귀질환인 헌터증후군인 ‘헌터라제’(미국 임상 2상)과, 선천성 면역결핍증 치료제인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미국 허가 신청)’, A형 혈우병 치료제인 ‘그린진에프’(글로벌 3상)를 국내에서 기출시했다. 또 다른 바이오의약품으로는 B형간염 항체치료제 ‘GC1102’(2상)를 준비 중이다.
앞으로 기대가 되는 치료는 항암제다. 녹십자는 대장암 치료제 ‘GC1118A’와 유방암(허셉틴의 바이오베터) 치료제 ‘MGAH22’ 등을 개발해 임상을 진행 중에 있다. 박 소장은 대장암 치료제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머크가 개발한 얼비툭스가 대표적인 대장암치료제인데 우리는 이 표적항암제와 다른 부위를 바인딩한다. 기존 항암제와는 차별성이 있다”고 자신했다. 이어 그는 “다만 국내에서 임상3상을 끌어가기엔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2상 초반부터는 라이센싱아웃을 통한 개발 전략으로 계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제약업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면역’을 활용한 치료제 개발이다. 녹십자는 백신 개발을 오랫동안 하면서 면역 분야에서 수많은 노하우를 쌓았다. 박 소장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이용해 암과 싸우는 ‘면역항암제’도 관심 분야다. 면역관련 바인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피고 후보물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약개발 단계 마다 위기는 따르기 마련이다. 박 소장은 “신약개발은 정신(spirit)만 갖고는 안되고, 시스템이나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오랜 연구개발을 통해 터득한 것은 문제를 조기에 빠르게 노출해 리스크를 줄이는 작업이다. ‘문제가 있는 것을 없게 하는 것’이 연구 아니겠느냐”며 “후보물질이 나왔을 때 임상 시험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속도를 높이고자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을 통해 효율적으로 관리해왔다. 쉽게 설명하면, 모든 연구자가 자신이 개발하는 후보물질에 대한 애착이 강할 수 밖에 없다. 프로젝트의 리더는 자신의 약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흐려질 수 있다. 이럴 때 안전성, 약의 효능 등을 객관적으로 체크하고 제품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미래 먹거리로 제약산업을 꼽았지만 여전히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박 소장은 “정부의 제약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일관되고 길게 가져기발 바란다”고 당부했다. 녹십자는 SK케미칼 등과 선의의 경쟁도 펼치고 있다. 그는 “우리는 좋은 협력을 할 수 있는 곳을 늘 찾고 있다”며 “한미약품 같이 랩스커버리 플랫폼 등의 강점을 가진 회사들과 콜라보를 한다면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약개발과 관련 박두홍 소장은 “우리나라가 제약 분야에 있어서 사실 매출이나 규모는 아직 다른 영역에 비해 영세하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끈기를 갖고 가길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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