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장윤형 기자] 60대 가장인 김재석(가명)씨와 가족들은 지난 2013년 겨울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병원에서 듣게 됐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평소 고혈압과 관상동맥질환을 앓고 있어 서울성모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아왔다. 그해 겨울 약처방을 위해 내원한 김씨는 이상소견을 확인, CT촬영을 통해 폐암 판정을 받았다. 김씨의 몸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처음 진단 당시만 해도 폐 부위에 있던 암덩어리는 1.6cm 정도로 크지 않았으나, 양쪽 쇄골상 림프절, 갈비뼈와 골반뼈에도 암이 전이돼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후 김씨는 머리털이 빠질 정도로 독한 세포독성항암제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네차례의 항암치료 후 부분반응(원발 병소의 크기가 치료 전 대비 50% 이상 감소한 상태)을 보여 항암치료를 중단했다. 이어 2014년 면역항암제인 ‘옵디보’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이후 지난 2년 간 옵디보로 치료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폐암 4기라고 하면 말기암으로 치부한다. 폐암은 진단이 늦으면 치료도 어렵고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암종 중 사망률 1위가 바로 폐암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까지 폐암을 정복한 치료제 역시 없다.
그런데 희소식이 생겼다. 최근 폐암 등의 항암치료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는 의학계의 평을 받고 있는 약이 있다. 바로 ‘면역항암제’다. 폐암 4기 환자인 김씨에게 면역항암제 임상시험 참여 기회는 행운이었다. 항암치료 중단 후 추적검사를 하는 과정 도중 2014년 9월, 오노약품공업과 BMS의 옵디보 임상시험이 있다는 소식을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으로부터 듣게 됐다. 임상시험 대상자가 되기 위한 자격도 까다로웠지만 그는 조건에 부합하는 환자였다. 그를 담당하는 주치의는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다.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기 위해 지난 2년간 김재석씨는 강진형 교수를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면역항암제는 2주에 한 번 간격으로 투여해야 한다. 폐암 4기를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환자와 이를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만남이 이렇게 시작됐다.
◇40년간 흡연생활 끝 찾아온 ‘폐암’, 면역항암제 효과는= 폐암의 가장 중요한 발병 요인은 흡연이다. 김씨 역시 20대 초반부터 약 40년간 술과 담배를 해온탓으로 폐암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강진형 교수는 “40년이나 흡연을 했기 때문에 폐암이 발병했다”며 “환자의 경우 표적치료제를 사용할 수도 없는 환자였다. 오랜 기간 흡연한 환자들은 표적항암제의 중요한 돌연변이인 EGFR 유전자 변이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시점에 면역항암제인 옵디보를 만난 것은 환자에게 좋은 기회였다. 그렇다면 2년간 면역항암제를 투여한 결과는 어땠을까. 강 교수는 “환자는 면역항암제 투여 2개월 후 폐에 있는 원발 병소와 림프절, 골반뼈의 전이 병소까지 암 크기의 50% 이상이 줄어드는 부분반응이 나타났다”며 “줄어든 이후 현재까지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면역항암제는 1년에 약 7000만원이라는 비용이 드는 고가의 약물이다. 아직까지 보건복지부에서 건강보험 급여로 적용하지 않아, 환자가 100% 본인 부담으로 약값을 내야 한다. 일부에선 면역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는 환자를 제한하도록 PD-L1(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 기능을 저하하기 위해 분비하는 단백질)을 통한 선별 기준을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다. 강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PD-L1 자체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PD-L1 발현율에 대해 몇 퍼센트를 기준으로 둘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과학적인 근거와 보험재정 이슈 등 여러가지 변수를 잘 고려해 정부와 보험급여 협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자 “면역항암제 치료·꾸준한 걷기 병행으로 암 이겨내”= 일반적으로 암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라고 하면 병상에 누운 힘없고 창백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건강한 사람과 동일한 몸상태와 혈색을 가진 김씨에게 폐암 4기라는 딱지는 어느덧 지워졌다. 그는 면역항암제 투여한 지난 2년 간 건강하게 두발로 아내와 함께 힘차게 걸어다니고 있다. 기존 항암제는 구토, 탈모와 같은 전신적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내성발현과 같은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개발된 면역항암제는 기존 항암제들의 부작용을 보완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김씨 역시 고비는 있었다. 강진형 교수는 “한때 간수치가 정상인보다 많이 올라 간염 증세를 보여 약물을 임시 중단했다”며 “이때는 치료를 중단하고 간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면역항암제를 투여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면역항암제가 놀라운 효과를 가졌으나, 모두에게 우수한 효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적정 환자에게 투여하면 좋은 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 김씨는 “기존 항암제를 투여할 때는 얼굴에 발진도 나고 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기피하게 될 정도로 부작용이 심했는데 면역항암제는 그런 증세가 거의 없다”며 “무엇보다 암을 이겨내고자 꾸준히 걷고 좋은 음식을 먹는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요법 등에 의지하기보다 주치의의 말을 신뢰하고 따르면 폐암도 극복할 수 있다”고 환자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