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에게 듣는다]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

[총장에게 듣는다]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

기사승인 2016-10-16 19:12:13


지난 5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당내 비상대책위원장에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을 삼고초려한 일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정 대표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총장은 살면서 만나 본 사람 중 가장 양심적이고 맑은 분”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대학과의 약속’이 먼저라며 비대위원장직을 고사했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 그는 어떤 인물일까. 상아탑의 수장인 그를 수식하는 말들은 다양하다. ‘고졸신화의 주인공’, ‘입지전적의 인물’, ‘돈·학벌·인맥 없는 3무(無) 인생…. 하지만 김 총장이 실제 살아온 삶은 위 표현만으로는 부족할지 모른다. 

흔히 세간에서 말하는 자수성가형 인물이라 하면 어딘지 모르게 엄격하거나 강한 고집, 집요함,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상을 떠올리기 쉽다. 

반면, 김 총장은 부드럽다. 대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온화한 인상도 한 몫 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에게서 물씬 뿜어져 나오는 긍정적인 에너지 때문인 듯 했다. 기껏해야 한 시간 남짓 진행한 인터뷰였지만 그를 삼고초려 한 정 원내대표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김 총장의 인생역정은 그야말로 인간승리의 드라마다. 그의 아버지는 불과 서른셋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김 총장의 나이 11살 때의 일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집에서 지냈던 그의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청계천 판자촌으로 쫒기듯 이사를 가야 했다. 그마저도 몇 년 후 판자집이 강제 철거되면서 경기도 성남으로 또 한 번 이사를 가야했다. 이사한 곳은 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천막이었다. 

아버지를 여읜 장남 김동연의 어깨에는 ‘소년가장’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짐이 지워졌다. 할머니와 어머니, 세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매일 끼니걱정을 해야 했고 툭하면 배를 굶주리기 일쑤였다. 처절한 절망 속에서 세상을 향한 원망도 했다. 세상은 그에게 불공평했고 한 줄기 빛조차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이었다. 

하지만 소년 김동연은 꿈을 놓지 않았다. 끝 모를 가혹한 운명에 놓인 어린 소년이 꿈을 꾼다는 것은, ‘사치’를 넘어 잔인하기까지 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꿈을 꿨다. 

그 시절 그를 지탱한 것은 ‘꿈과 열정’, 그것도 허황될 정도로 큰 꿈이었다. 

인문고를 다니고 싶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공부를 곧잘 했던 그는 상업고로 진학하고 졸업하던 해 은행시험에 합격해 어엿한 은행원이 된다. 은행원이 되고 나서도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계속 목이 탔다. 그래서 낮에는 은행에 다니고 밤에는 국제대 야간 대학을 다니면서 고시공부에 매달렸다. 

김 총장이 처음 고시공부에 뛰어든 계기도 흥미롭다. 은행에 근무하면서 합숙소에서 생활하던 그는 어느 날 선배가 쓰레기통에 버린 고시잡지를 무심코 집어 들었다. 이 일은 앞으로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된다. 살면서 '고시'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던 그에게 가혹하기만 했던 운명이 준 선물이었다. 



‘반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국가를 뒤집자는 극단적 반란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반란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은행원으로 평생 사는 것보다 그동안 박탈 당했던 인생의 가치를 다시 되찾고 싶었다. 

낮에는 은행에 다니고 밤에는 고시공부를 하는 ‘주경야독’의 나날이 이어졌다. 은행을 그만두고 고시공부만 하면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독하게 매달린 끝에 김 총장은 야간대학을 졸업하던 1982년 기적처럼 행정고시(26회)와 입법고시(6회)에 모두 합격하고 현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탄탄대로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학벌이라는 벽이 그를 막아섰다. 처음 공무원에 임용돼 선배들에게 인사하러 간 날 선배들이 물어본 것은 “어느 대학 출신이냐”는 것이었다. 야간대학에 다녔다고 대답하고 뒤돌아 문을 나서는 순간 “요즘 별 희안한 학교 출신도 온다”는 비아냥이 그의 귓등을 때렸다

학벌 위주의 엘리트 사회에서 그는 철저한 비주류였기에 남들보다 몇 배, 몇 십배 노력했다. 유학을 꿈꾸며 영어공부도시작했다. 영어로 잠꼬대를 할 정도로 절실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그는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됐고, 미국 정부에서 주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책학 박사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후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기획관,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차관 등을 거쳐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까지 역임했다. 

그런데 공직의 정점인 국무조정실장직을 1년여 했을 즈음 그는 돌연 사의를 표명한다. 32년에 이르는 오랜 공직생활 동안 불미스런 일도 빚은 적이 없었기에 모두가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물러날 때를 아는 공직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김동연 총장은 항상 마음 깊은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고 했다. 어쩌면 그가 공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아주대 총장으로서의 '제2막'을 시작한 것은 운명이 준 또 하나의 선물일지 모른다. 



◆ 교육에 波瀾 일으키는 '파란학기제', 타 대학과의 벽마저 허문 파격


김 총장은 ‘유쾌한 반란’의 전도사다. 그는 “반란은 무엇인가를 뒤집고자 하는 가장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며,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기 때문에 유쾌하다”고 말했다. 

‘유쾌한 반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대한 반란, 둘째 자기의 틀을 깨는 자신에 대한 반란, 마지막 세 번째는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사회에 대한 반란이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남이 낸 문제, 내가 낸 문제, 사회가 낸 문제를 의미하고 있다.

“대학의 경우 학령인구가 줄고 재정적 어려움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선제적·창의적으로 대응하는 ‘환경에 대한 반란’을 일으켜야 합니다. 현재 대학 교육의 내용과 질, 정형(定型)으로는 사회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습니다. 대학 스스로 틀을 깨는 자신에 대한 반란, 그리고 우리사회의 구조적·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에 대한 반란’에도 대학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아주대학교는 이러한 김 총장의 의지에 힘입어 다양하고 혁신적인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1학기부터 시작한 ‘파란학기제’와 소외계층 학생들을 위한 해외연수 프로그램 ‘AFTER YOU’ 등이 바로 그것이다. 

국내 최초로 시행된 파란학기제는 학생 스스로가 공부나 활동을 도전과제로 설계하고 제시하면, 대학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정규 과목으로 승인하는 프로그램이다. 파란학기라는 이름은 아주대의 상징색 ‘아주블루’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지만, 알을 깬다는 의미의 파란(破卵)과 대학 교육에 파란(波瀾)을 일으키자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 

올해 파란학기에는 총 209명의 학생이 74개 주제로 참여했다. ‘국제 대회용 자동차 제작, 수화를 통한 청각장애인 심리상, 동남아 현지창업 등 기발하고 다양한 주제의 프로젝트가 눈길을 끈다. 학점은 3~18학점까지 받을 수 있다. 

“학생들이 기존 수업을 듣는 것보다 평균 세 배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으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때문에 즐거워 합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을 바치는 투자를 해본 경험이 앞으로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아주대는 또 ‘AFTER YOU’ 프로그램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글로벌 명문대학에서의 교육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양극화로 인해 단절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만들자는 취지다. 지난해 여름부터 220여명의 학생이 미국 미시간대 존스홉킨스대 워싱턴대 중국 상해교통대 북경이공대 등 세계 유수대학으로 퍼져나갔다. 소요 예산 전액은 프로그램 취지에 공간하는 외부인사들의 모금을 통해 마련된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선발 학생의 20%를 아주대 학생이 아닌 타 대학의 학생들로 선발한다는 점이다. 참가자 선발과정 역시 학업이나 외국어성적 보다는 가정형편과 하고자 하는 의지에 주안점을 둔다. 이는 'AFTER YOU'의 가치가 아주대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길 바라는 김 총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 밖에도 아주대는 이번 학기부터 취·창업 진로책임서포트제 ‘Cheer Up, Change Up’을 시작했다. ▲ 저학년 대상, 진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Early Awakening’ ▲ 신입생과 3학년생 대상, 전담교수나 전문가의 맞춤형 개별상담제 ▲ 단과대학 별 최근 졸업 동문의 생생한 진로 정보 제공 ▲ 학생별 개인 상황에 맞춘 어학, 인터뷰 기술 등 진로 지원 패키지 ▲ 아주대생이면 누구나 동문 등에게 진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유쾌한 멘토링’ 등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입학에서부터 졸업까지 체계적인 진로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고난과 역경은 '위장된 축복'..남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라

 학생들과의 소통에서도 김 총장은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2주에 한번씩 샌드위치나 피자 등으로 간단히 점심을 하면서 학생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는 ‘브라운 백 미팅’을 열고 있다. 이 자리에선 총장을 만나고 싶은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올 수 있고 어떤 주제로든 제한 없이 대화할 수 있다. 신청 때마다 김 총장을 만나고 싶어하는 학생들로 매번 성황을 이룬다. 

다독가로도 유명한 김 총장은 책을 통한 소통의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그가 아이디어를 낸 ‘총장북클럽’은 매달 한 권의 책을 정해 신청한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다 읽은 후 만나 자유 토론하는 모임이다. 또 학생들과 책을 돌려 읽으며 맨 뒷장에 한 줄씩 소감을 다는 ‘총장 북 릴레이’ 캠페인도 있다. 총장과의 직접적인 소통에 생소했던 학생들은 처음엔 부끄러워하고 주저하기도 했지만 만남이 거듭될수록 자신감 있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 총장은 ‘실력과 매력을 갖춘 젊은이’를 가장 바람직한 인재로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정답이 아닌 자기 답을 찾아야 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자기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열장에서 물건 고르듯 다른 사람의 꿈이나 직업을 내 것으로 삼는 방식은 안됩니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깨져봐야 하죠.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치면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첫걸음은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겁니다. 그래야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고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절의 경험이 ‘위장된 축복’이었다고 말하는 김동연 총장. 어려웠던 환경이 준 결핍은 절실함을 만들었고, 절실함은 꿈과 열정을 잉태시켜 결국 그는 봉기(蜂起)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가 총장이 되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붙들고 있는 화두는 ‘계층 간의 이동이 원활한 사회’다.  마음 속 목소리를 따라 교육현장에서 직접 부딪혀 사회의 고민을 해결하려는 그의 새로운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우리네 속담이 언젠가부터 ‘개천에서 용이 익사한다’는 씁쓸한 우스갯소리로 바뀌어 버린 요즘, “계층 이동 사다리를 만들어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고 싶다”는 김 총장의 꿈이, 아니 이제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된 그 꿈의 마지막 장이 기대된다.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

- 행정고시(26회), 입법고시(6회)
- 경제기획원 사무관, 재정경제원 과장
세계은행(IBRD) 프로젝트 매니저 
-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기획관
-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
-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 기획재정부 차관
- 국무조정실장(장관급) 
- 現 아주대학교 총장 


유경표 기자 scoop@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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