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 서럽고 일 못해 소득 없는 고통…상병수당제 대안될까

아파 서럽고 일 못해 소득 없는 고통…상병수당제 대안될까

기사승인 2017-02-24 17:33:43

[쿠키뉴스=장윤형 기자] 질병으로 인해 근로에 종사할 수 없을 때, 갑작스러운 소득 감소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막고자 건강보험료 재정을 활용해 ‘상병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까지는 일을 하다가 질병 및 상해를 입으면 '산재보험'을 신청 후, 승인을 받은 재해노동자에게 산재보험에서 소득보전 차원으로 상병수당인 휴업급여를 평균 임금의 70%로 제공해주고 있다. 문제는 업무과 무관하게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 일정 기간 휴업을 해도 소득을 보전받을 수 있는 보장제도가 없다. 의료비에서도 본인부담이 발생하는 관계로

암이나 중증 질환이 발생하거나 장기간 치료를 하게 될 경우 실질소득이 줄어 가계가 파탄 지경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저임금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맞벌이인 경우가  많아 배우자가 간병을 하지 않으면, 간경비 부담 등으로 가계의 소득이 줄어들어 빈곤 계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임준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국회 양승조 보건복지위원장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24일 주최한 '우리나라 상병수당제도 도입방안'을 주제로 한 제6회 환자포럼에서 "업무 상 재해나 질병으로 인해 산재보험을 받는 경우 외에도, 질병으로 일을 할 수 없게된 저임금자나 소규모 사업장의 근로자, 자영업자를 위한 소득보전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소득손실을 보전하는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의료비 지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상병수당제 등의 ‘사회보험제도’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업무상의 재해나 질병으로 산재보험을 받아야 하는 노동자도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보험처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일례로 사무직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과도한 업무량, 잦은 야근 등으로 불면증을 호소해 정신과 진료를 받을 경우 직업과의 관련성을 입증하기란 어렵다. 또한 업무를 하다가 중증의 암이 발병해도 직업과의 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빈번하다. 

문제는 비정규직,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이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소득이 상실돼 가정 형편은 더욱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임준 교수는 "산재보험으로 처리돼 사업주 부담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반드시 있어도 실제로는 노동자 개인 부담 비율이 훨씬 큰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게 돼 온전히 노동자 부담으로 전가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며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자에게 질병으로 인한 소득손실은 별도의 민간보험을 들지 않는 한 보전할 방법이 없다.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자의 부담은 의료비 뿐 아니라 생활을 영위하는 소득의 손실도 포함된다"고 꼬집었다.

사회복지가 발달된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은 질병이 발생해 노동을 할 수 없게 되면 사회보험제도 하에서 상병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은 "독일의 경우는 임금의 75%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으며 일본도 피보험자가 노동을 할 수 없는 경우 최고 1년 6개월 한도 내에서 상병수당을 지급한다"며 "온가족이 자살한 송파 세모녀 사건을 봐도, 가장의 와병으로 빈곤층으로 추락한 경우다. 이들을 위해 의료비로 인한 재난적 상황 뿐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소득감소를 보전할 수 있는 상병수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OECD 34개 회원국 중 공적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에 국민들은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하고 있다. 2013년 전체 가구 중 77%가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으며 가구당 월 평균 보험료가 28만8000원(종신, 연금보험 특약 포함). 같은 해 직장 가입자들이 국민건강보험에 내는 세대별 본인 부담 보험료 평균 9만3000원의 3배 수준을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보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에도 상병수당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3년 국회에서 개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 조항에는 대통령령으로 상병수당을 부가급여로 실시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통령령에는 상병수당 지급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데도, 정부에서도 예산 부담을 이유로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다만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회보장권 강화 측면에서 상병수당의 의무급여화를 통한 건강보험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정 위원은 "건강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지해야 한다.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근로자가 소득이 없어지면서 또 다른 가계 파탄의 위기를 맞을 수 있게 될 위험을 국가에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상병수당에 따른 국가 재정 마련이다. 현재 건강보험료 재정이 20조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임 교수는 "2015년 총 입원일수 5176만 여일을 전제로 2017년 노동부 발표 평균임금의 70%를 소득손실로 인정할 경우 1년에 최대 2조8225억원 정도의 상병수당 재정이 투입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 위원 역시 "2011년 경제활동인구 대비로 산출해 평균입원기간 1개월을 대비해 추계해 보니 대략 3조원이 투입될 수 있다"며 "건강보험 흑자를 의료비에만 투입할 것이 아니라, 상병수당 도입을 위해서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평균 2~3조 정도의 재정이 질병으로 일을 못하는 근로자나 자영업자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상병수당제도가 실시되지 않아 우리 국민 대다수가 질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 시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은 상태에서 질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은 빈곤으로 가는 급행 노선이다. 국민건강보험의 협소한 의료보장을 넘어설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newsroom@kukinews.com

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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