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윤민섭 기자] 모든 단체 스포츠 종목에는 소위 ‘꽃’에 비유되는 포지션이 존재한다. 가령 축구에선 공격수다.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늘 골잡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야구에서 대중의 주목은 밥상을 먹음직스레 차리는 테이블 세터가 아니라 야무지게 먹는 4번 타자에게 향한다. 얼마나 잘 먹어치우는가가 곧 인기의 척도다.
투수의 공이 타자의 배트에 맞는 일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승리투수 달성 요건에는 포수와 내·외야수의 호수비가 반드시 포함된다. 그러나 야구 뉴스 페이지의 메인은 ‘선발 ○○○, 무실점 호투’로 도배되기 마련이다.
농구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조던부터 앨런 아이버슨과 코비 브라이언트를 거쳐 스테판 커리에 이르기까지. 언론과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고 이른바 ‘슈퍼스타’로 불리던 이들 대부분은 슈팅 가드나 듀얼 가드였다. 그들의 인기비결은 대체적으로 같다. 누구보다 골을 잘 넣었다.
팀 스포츠에서 모든 포지션엔 제 각기 중요한 역할이 있다. 허나 일부 포지션이 더 빛나고, 또 주목받는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소년만화의 주인공들이 같은 포지션을 도맡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법칙은 e스포츠에도 적용된다. 여기도 포지션이 나뉘고 꽃이 존재한다. 1대1 종목이었던 스타크래프트를 원동력 삼아 e스포츠가 태동했지만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종목들은 대부분 팀 게임이기 때문이다.
캐릭터·라인 별로 역할을 달리하는 AOS 게임들은 물론, 하이퍼 FPS를 표방하는 오버워치 역시 탱커·서포터·DPS로 그 포지션을 달리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FPS 게임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카운터 스트라이커: 글로벌 오펜스도 아이템의 종류와 팀의 전략·전술에 따라 선수의 포지션을 나눈다.
최고 인기 종목인 리그 오브 레전드의 꽃은 미드 라이너다. 탱커·정글러·서포터가 깔아준 판 위에서 온갖 스킬 이펙트의 화려함을 뽐내며 킬을 쓸어 담고 전장을 뛰노는 이들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유저들에게 최고의 캐리 라인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열에 아홉은 미드라고 대답한다. 지난 시즌3 이후 미드 라이너의 캐리력을 억제하기 위해 각종 패치가 꾸준히 이뤄졌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게임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미드는 캐리의 사명을 타고났다.
북미 LCS의 팀 솔로미드(TSM)가 매 시즌마다 약간의 선수 교체를 감행해도 늘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은 북미 최고 선수인 ‘비역슨’ 쇠렌 비에르그가 붙박이 미드 라이너로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탑의 ‘다이러스’가 ‘하운처’로, 원거리 딜러가 ‘와일드터틀’에서 ‘더블리프트’로 바뀌어도 미드는 시즌3 이후 늘 ‘북체미 비역슨’이었다. 다른 라인들이 기량 저하나 메타 부적응 등의 이유로 부진할 때도 있었지만 ‘비역슨’은 늘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TSM이 롤드컵에 개근하는 가장 큰 힘이다.
G2 e스포츠가 장기간 유럽의 패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같은 대륙에 ‘퍽즈’ 루카 페르코비치에 대적할 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G2는 다른 라인도 대륙 최고의 라이너들로 구성된 팀이다. 그러나 정글러 ‘트릭’ 김강윤과 바텀 듀오 ‘즈벤’ ‘미티’같은 팀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G2가 국제무대에서 기를 못 쓰는 것 역시 세계무대에 나올 정도의 팀이 되면 ‘퍽즈’가 대적할 수 있는 미드 라이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롤챔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스프링 스플릿을 복기해보자. 호성적을 거둔 팀에는 늘 뛰어난 미드 라이너가 있었다. ‘페이커’를 보유한 우승팀 SKT는 물론이요,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KT·삼성·아프리카·MVP 모두 ‘폰’ 허원석 ‘크라운’ 이민호 ‘쿠로’ 이서행 ‘이안’ 안준형이라는 걸출한 미드라이너가 팀을 지탱했다.
이번 MSI에는 세계 각지의 뛰어난 미드 라이너들이 대거 출전한다. 우선 MSI 2연패를 노리는 ‘페이커’가 한국 대표로 선다. 또 지난 LCS 스프링 스플릿 우승을 통해 북미와 유럽에서 각각 최고 미드 자리를 공고히 한 ‘비역슨’과 ‘퍽즈’가 나온다.
대만에서는 정글러 ‘카사’와 함께 ‘한국킬러’로 명성이 자자한 플래시 울브즈의 ‘메이플’ 후앙 이탕이 다시 한 번 SKT를 위협한다.
중국에는 뛰어난 한국인 미드 라이너들이 즐비하다. ‘스카웃’ 이예찬 ‘아테나’ 강하운 ‘루키’ 송의진 ‘코코’ 신진영 ‘도인비’ 김태상 ‘이지훈’ 등이 활약 중이다. 따라서 LPL에서 우승을 차지하려면 미드 라이너의 선전이 필수다. 올 시즌 LPL 우승팀인 월드 엘리트(WE)는 탑·바텀 라이너들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특히 미드 라인의 ‘시예’ 수 한웨이가 드디어 알을 깨고 나왔다는 평을 듣고 있다.
와일드카드로 진출한 기가바이트 마린즈의 에이스 역시 미드 라이너다. 지난 2016년 올스타전에 출전해 전세계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던 ‘옵티머스’ 반 쿠엉 쩐이 플레이인(Play In) 스테이지에서 맹활약하며 단 한 장만 허용된 본선 무대 진출 티켓을 팀에 선물했다.
이번 MSI는 각 지역 최강의 미드 라이너들이 출전, 각축을 벌이는 증명의 전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의 활약을 눈여겨보는 것은 MSI를 재밌게 감상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yoonminseop@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