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1293번째 ‘수요집회’와 ‘엄지척’ 국회의원

[친절한 쿡기자] 1293번째 ‘수요집회’와 ‘엄지척’ 국회의원

1293번째 ‘수요집회’와 ‘엄지척’ 국회의원

기사승인 2017-07-26 17:12:51

[쿠키뉴스=심유철 기자]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할머니 명단에서 또 한 분의 이름이 지워졌습니다. 고(故) 김군자(91) 할머니는 지난 23일 건강상태 악화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고 김 할머니는 16세 때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 동원됐습니다. 수차례 탈출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죠. 일본군에게 구타를 당한 고 김 할머니는 왼쪽 고막이 터져 청력을 잃었습니다. 그는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역경은 고 김 할머니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고 김 할머니는 10년 전 미국 연방하원 주최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위안부 실태를 용기 있게 증언한 분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였던 고 김 할머니, 이제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평안하길 바랍니다”라고 명복을 빌었습니다. 

온 국민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고 김 할머니의 빈소에서 국회의원들이 엄지손가락을 들고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손혜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이 빈소에서 찍은 사진이 지난 25일 SNS에 공개돼 논란이 일었습니다. 두 의원은 전날 고 김 할머니의 빈소에서 민주당 지지자들과 함께 밝게 웃으며 ‘엄지척’을 하고 사진을 찍었는데요. 해당 사진은 인터넷상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네티즌들은 두 의원이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고 한목소리로 질타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고인을 기리는 빈소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두 의원은 국민에게 사과했습니다. 손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장례식장의 추모 분위기에 맞지 않은 ‘엄지척’ 제스처를 취한 점은 제가 경솔했다”며 “마지막으로 빈소를 정리하며 사진을 찍으면서 긴장이 풀렸다. 제 잘못이다.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빈소임을 망각했다. 고 김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쁘게 보내드리자는 봉사자의 뜻을 수렴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송 의원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고 김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인해 고인의 명복을 기리는 모든 분께 큰 상처를 드렸다. 빈소임을 잠시 잊었다. 죄송하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두 의원의 사과에도 논란은 쉽게 잦아 들지 않고 있습니다. 야당은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질타했습니다. 김익환 바른정당 대변인은 이날 “고 김 할머니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위안소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한 분”이라며 “일본의 제대로 된 사죄도 받아내지 못한 채 가슴에 한을 안고 떠나셨다. 땅을 치고 슬퍼해도 부족할 판에 잔칫집에 온 것 같은 손 의원과 송 의원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 역시 “두 의원의 행동은 어떤 변명으로도 납득하기 어렵고 용서할 수 없다”며 “‘나라다운 나라’는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예의와 상식을 지키는 데서 비롯된다. 당 차원의 즉각적인 사죄와 국회 윤리위원회 회부 등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한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손 의원과 송 의원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음에도 불구하고 비난이 쇄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지난 1991년 8월14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집회를 열고 일본에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집회는 26일, 1293번째를 맞았습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지난 21일 성명을 통해 “굴욕적인 한·일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며 “‘12.28 한·일 합의’를 무효로 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일 간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 측은 ‘합의된 내용’이라며 한국 측에 서울 종로구 중학동 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죠. 양 측이 의견 대립을 하는 동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238명 중 37명 만이 남았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받으려는 마음은 시간이 흐른 만큼 간절해졌습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아픔을 누구보다 공감하고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목소리 높였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국민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빈소에서 ‘엄지척’을 하는 것이 그들의 상식은 아니었겠죠. 진심 어린 반성이 필요합니다. 

tladbcjf@kukinews.com

심유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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