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못해서합니다] “오늘 전쟁이 난다면, 나는?”…피난 체험기

[아무나못해서합니다] “오늘 전쟁이 난다면, 나는?”…피난 체험기

기사승인 2017-09-18 05:50:00

‘윙~’ 사이렌 소리가 귀청을 때립니다. 침대에서 용수철이 튕기듯 일어납니다. 현재 시간 새벽 4시40분.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에서 알립니다. 낙성대동 주민 여러분은 지금 즉시 인근 대피소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말로만 듣던 공습경보입니다. ‘딩동~’. 국민재난안전처로부터 대피하라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휴대전화는 곧 먹통이 되고 말았습니다. ‘쾅’ ’쾅’ 포탄이 터질 때 발생하는 진동으로 온몸이 흔들립니다. 마치 지진이 난 것 같습니다. 눈곱만 뗀 채 허둥지둥 피난가방을 싸기 시작합니다. 

전쟁 발발 직후 상황을 한번 가정해 보았습니다. 생각만해도 식은땀이 나는데요.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에 국민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국민 대다수는 우왕좌왕할 것이 분명합니다. 온라인에 올라온 글만 살펴봐도 “전쟁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내가 며칠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 등의 반응이 지배적입니다.

전시상황에서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물품들이 있습니다. 전기·통신·수도 등이 단절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를 대비해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는 전쟁‧재난에 대비한 ‘재난가방’ ‘피난가방’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방송인 최민용씨는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언제 위기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항상 피난가방을 꾸려놓는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러나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피난가방은 기본 10만원을 훌쩍 넘습니다. 30만원에 육박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집에 있는 물품만으로는 피난가방을 꾸릴 수 없을까요? 궁금증 해결을 위해 나섰습니다. 전시상황을 가정해 피난가방을 꾸려봤습니다. 

인간 생활의 기본요소 3가지는 ‘의식주’ 입니다. 기자에게는 ‘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찬장에 넣어뒀던 과자 1봉지, 초콜릿, 라면 4봉지, 햇반 3개를 평소에 매고 다니던 가방에 던져 넣었습니다. 라면은 부숴 먹고, 햇반은 물에 불려 먹을 생각입니다. 체내 수분이 부족해질 경우를 대비해 이온 음료도 챙겼습니다. 가장 중요한 물을 빼놓을 수 없죠. 냉장고에 있던 2ℓ짜리 물 1병도 집었습니다. 

아무리 전쟁통이어도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만은 잃고 싶지 않습니다. 위생을 위한 두루마리 휴지와 물티슈, 비닐봉지 5장을 챙겼습니다. 갈아입을 티셔츠 3벌과 양말 3켤레도 필요할 것 같군요. 칫솔과 치약, 비상상황에 대비한 감기약과 반창고 등 약품이 빠지면 안 되겠죠. 비가 올 때를 대비한 우비, 대피소 바닥에 앉을 때 필요한 돗자리 등도 가방에 욱여넣었습니다. 처음치고는 그럴듯한 피난가방이 되어갑니다.

또 무엇이 필요할까요? 시선이 책상으로 향했습니다. 한눈에 봐도 무거워 보이는 회사 노트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트북 없는 기자는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간 군인과 다름없죠. 고민에 빠졌지만, 그것도 잠시, 무서운 선배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인터넷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노트북을 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손전등도 잊지 않았죠. 

3일 동안 목숨을 부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한 물건들은 모두 챙겼습니다. 군 복무 시절 매봤던 완전군장이 떠올랐습니다. 완전군장의 무게는 20~25㎏입니다. 피난가방은 측정 결과 5.5㎏이었습니다. 이상하네요. 체감상 완전군장에 육박하는 무게였는데 말이죠.

정부가 지정한 민방위 대피시설로 이동할 순서입니다. 기자는 사전에 가까운 대피시설을 확인해뒀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국민재난안전포털 사이트에 접속한 뒤, ‘민방위’ ‘대피시설’ 순으로 클릭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거주지를 선택하면 됩니다. 기자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검색하니 총 다섯 군데의 대피시설이 나왔습니다. 가장 가까운 건물은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에 위치한 모 교육센터입니다. 도보로 약 12분이 소요된다고 하네요. 현재시각 오전 10시42분. 대피소로 출발합니다. 

3분 정도 걸었을까요? 피난가방이 너무 무겁습니다. 문득 북한군이 뒤에서 총을 들고 쫓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무거운 가방 탓에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죽는 건 아닐까 걱정입니다. 초행길이라 목적지를 찾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미리 검색한 대로 이동하고 있지만, 대피소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설상가상 대피시설을 안내하는 표지판은 찾아볼 수조차 없고요.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 뒤로 10여 분 더 걸었을까요. 마침내 대피시설이 보입니다. 총 20분이 소요됐습니다. 예상 시간보다 7분 더 걸렸습니다. 평소 미리 대피시설을 방문해 본다면, 위급 상황에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교육센터 건물 주차장은 전쟁 및 재난 상황 시 대피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미 자동차들이 주차장을 모두 차지하고 있군요. 사실상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중앙통로 정도입니다. 200여명 정도 수용이 가능해 보입니다. 낙성대동 주민센터에 따르면 이달 기준 낙성대동에 거주하는 주민 수는 1만7000여명. 이 지역 대피시설이 5곳인 것을 감안하면 대피소당 약 3400명을 수용해야 합니다. 과연 인원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까요.     

뿐만 아닙니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민방위기본법 제15조(민방위 준비)에 따르면 대피시설은 건축법 제2조 제1항 제5호에서 규정한 지하층을 두고 있는 건축물입니다. 해당 건축법 조항은 지하층을 ‘건축물의 바닥이 지표면 아래에 있는 층’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센터 주차장은 지표면과 나란했습니다. 대피소가 그대로 외부에 노출된 것입니다. 포탄을 피해 일차적으로 몸을 숨기는 곳인 대피소의 역할을 제대로 할지 의문입니다. 

대피소에 도착했으니 피난가방을 제대로 사용해봐야겠죠? 챙겼던 물품들을 나열한 뒤 전문가의 평을 들어보았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피난 상황에서 짐을 챙길 때는 수도·전기·통신 등이 마비될 수 있다는 가정을 해야 합니다. 기자가 챙긴 물건들을 본 박상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연구관은 “겨울에 전쟁이 나면 얼어 죽겠다”고 일침을 가했는데요. 이어 “담요, 핫팩 등 보온에 필요한 물품이 필요하다”면서 “3일 기준으로 물 2ℓ를 챙기는 것은 맞다. 다만, 물은 유통기한 및 오염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500㎖ 병에 나눠서 보관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박 연구관은 생각만큼 식료품을 많이 챙길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을 고려했을 때, 3일 이내 정부 물자가 피난민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라디오와 여분의 건전지가 없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라디오는 전시상황과 대피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물품이기 때문이죠. 물티슈에 대한 팁도 있습니다. 물티슈는 일반·세안 및 샤워·대변용 등 용도별로 따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박 연구관은 “투명봉투는 왜 챙겼느냐. 대변용인가?”라며 “급하게 대변을 처리하기 위해 봉투가 필요하다. 기왕이면 검은색 봉투로 준비하자”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피난가방의 적절한 무게는 개인마다 다릅니다. 평균 5㎏을 넘지 않는 게 좋다고 합니다. 가방이 무거우면 신속한 이동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피난가방을 꾸리는 데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죠. 수도·전기·통신 마비 상황을 명심하고 각자에게 가장 필요한 물품을 떠올리면 됩니다. 평소에 미리 피난가방에 챙길 물건을 생각해보는 것도 위기 상황에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전쟁이 애초부터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 이겠지만 말이죠.

심유철, 이승희 기자 tladbcjf@kukinews.com

사진=박효상 기자 

심유철, 이승희 기자
tladbcjf@kukinews.com
심유철,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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