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질 않는 직장 내 성범죄… 우월적 지위· 솜방망이 징계 탓

끊이질 않는 직장 내 성범죄… 우월적 지위· 솜방망이 징계 탓

기사승인 2017-11-08 05:00:00

#“사회생활 못하네. 더 배워야겠다. L선생

수도권 모 대학교 기획처에서 근무했던 L(29·여)씨는 2년 동안 같은 팀에 근무하는 동료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입사 초반에는 잘해주는 선배였던 K씨는 스킨십이 잦았다. 하이파이브를 5일에 3일을 하길 원했고 손뼉 부딪힘 후엔 꼭 손깍지를 하면서 손을 잡았다.

회식에서 스킨십의 강도는 심해졌다. 둘만 있는 잠깐의 시간도 K씨는 놓치지 않았다. 손을 뿌리치면 사회생활 처세술에 대한 조언을 했다. 유부남이었던 K씨는 급기야 L씨에게 불륜을 두둔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사람이 마음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L씨에게 고백하기도 했다. L씨는 불이익이 있을까 봐 참다가 결국 팀 과장에게 고백했지만 해결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회사를 관둔 L모씨는 인사평가 때문에 참았다. 게다가 이직할 때 전 직장에서의 평이나 자질을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직장 내 성추행은 전방위적이다. 성폭력의 하나인 성추행은 성욕의 자극, 흥분을 목적으로 상대에게 성적 수치, 혐오 등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성추행이 성희롱과 다른 점은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추행하는 것이다.  

성추행 중 성희롱은 업무와 관련해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성적 말과 행동을 말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도 매년 술자리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났다. 지난달 중순 해양사업본부 A 상무가 술자리에서 여직원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직후 사측은 징계위원회 회부를 위한 절차에 돌입했고 이 과정 중 해당 임원은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퇴사했다.

앞서 2014년 회식 후 노래방을 찾은 자리에서 B상무가 여사원에게 술을 따르게 하고 포옹을 하는 등 성추행을 한 일도 있었으며 전산실 C상무가 여직원에게 코로 소주 흡입을 강요한 일도 있었다.

◇성희롱 진정건수 배 이상 '증가'… 권력관계 '발생'

최근 4년간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진정건수는 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이 고용부에서 제출받은 ‘20122016년 성희롱 진정사건 접수현황을 보면 2012249건이던 성희롱 진정사건 접수 건수는 지난해 552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직장 성범죄 특별단속 실적을 보면 총 631건 중 직장·조직 내가 519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타(73), 대학 내(39) 순이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소 2016성희롱 실태분석과 형사정책적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여성노동자 1652명 중 최근 2년간 성희롱 경험률은 39.4%, 피해 행위는 성적 농담, 외모평가, 특정 신체부위 접촉 등 평균 3.24종류로 나타났다.

성희롱 경험은 기혼보다 미혼의 경험률이 높고 생산직이 3.76가지로 가장 많은 성희롱 행위 수를 경험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비해 더 많은 종류의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3~5년 경력이 가장 높은 경험률을 보여 남성 노동자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 형성된 후 더 빈번히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행위자(가해자)95.3%로 압도적으로 남성이 다수였으며 이 중 상급자와 사업주가 가장 많았다. 성희롱은 성별 뿐 아니라 직위와 연령에 의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했다.

◇ 성희롱 예약 교육 실시 감독 '미흡'…솜방망이 징계 '한 몫' 

성희롱 진정건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실시 감독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용부의 고용평등분야 지도점검 현황을 보면 20141월부터 올해 9월까지 3년 동안 지도점검을 받은 사업장은 전체 대상 사업장의 0.7%에 그쳤다.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은 성희롱 판단 관점을 피해자의 주관적 사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되 객관적 상황을 같이 고려해 판단할 것을 제시한다. 판단은 그 사회의 평균적인 도덕적, 정서적 수준과 판단력을 가진 가상적인 사람이 문제의 성적 말과 행동이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했는지 여부로 판단한다.

직장 내 성희롱의 발생은 원인은 경직된 조직 내 집단 문화에 더해 솜방망이 징계 때문이다.

실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성희롱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해당되는 직장인 1150(여성 698, 남성 452)을 대상으로 실시한 복수응답 설문조사 결과, 피해자의 79.1%는 성희롱 발생 원인이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지목했다. ‘남성 중심적 직장문화’(75.5%), ‘남성의 약한 성 평등 인식’(69.8%) 등이 뒤를 이었다.

조직문화가 차별적이고 수직적일수록 성희롱이 발생하기 쉬웠다. 성희롱을 당한 직장의 조직문화에 관한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57.5%수직적인 조직이라고 응답했다. 남성의 53.8%는 성희롱을 피해를 입은 직장의 조직 문화가 수직적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여성의 59.1%가 조직문화를 수직적이라고 생각했다.

김노원 한국공인노무사회 사무총장은 직장 내 성희롱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 행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정부가 관련 법 개정 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등 사전 예방대책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사가 함께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혜 기자 hey333@kukinews.com
이종혜 기자
hey333@kukinews.com
이종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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