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을 ‘푸대접’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 대통령은 오는 13일부터 3박4일 간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중국 방문에 ‘새로운 출발’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왔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문제 해결과 대북 공조를 얻어내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중국 국영 방송 CCTV ‘환구시선’에서 “단숨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시간을 두고 풀어나가야 한다”며 “한·중이 사드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발전의 시대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이번 방중을 통해 양국 간 무너진 신뢰 관계가 회복되길 바란다”며 시 주석을 두고 “아주 진정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이다. 오랜 친구 관계가 되고 싶다”고 친근감을 표현했다.
반면, 중국 정부는 애초 예정된 국빈대접과는 거리가 먼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오는 14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다만,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국빈방문 시 공동성명이나 공동 언론 발표를 한다. 공동성명은 양국이 관계개선을 위해 정책적 합의에 도달했음을 상징하는 공식 외교문서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모두 취임 이후 첫 국빈 방중에서 공동성명을 냈다. 하지만 문 대통령 방중에는 양국이 따로 정리한 언론 발표문을 각자 전하는 선에서 정상회담 결과를 공표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사드 문제를 두고 공동성명에 양국 이견이 드러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뒤 한국 대통령 취임 후 첫 중국 방문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않은 일은 김영삼 정부 이후 23년 만이다.
문 대통령이 베이징에 도착하는 첫날, 시 주석과 만남도 없다. 시 주석이 다른 행사를 이유로 일정을 조정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해마다 장쑤(江蘇)성 난징에서 ‘난징 대학살’ 추모식을 개최해 왔다. 난징 대학살은 지난 1937년 중·일 전쟁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민간인 포함, 중국인 30만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중·일 관계 개선 기류 등을 감안해 시 주석이 해당 추모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 전망했다. 그러나 80주년을 맞는 난징 대학살 추모식이 행사 격을 높이면서 시 주석이 참석하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결국, 시 주석이 오는 13일 베이징을 비우면서 문 대통령의 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다. 중국 권력 서열 2인자로 꼽히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문 대통령의 오찬 약속도 늦은 오후로 연기됐다. 리 총리의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문 대통령의 다른 일정 역시 함께 순연됐다.
이번 한·중 공동성명 불발을 두고 야당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12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한반도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중 정상회담 공동성명 불발은 자칫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사드가 봉합됐다고 하지만, 시 주석은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외교·안보 혼선은 국민의 걱정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심유철 기자 tladbcjf@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