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휘몰아친 대학가… “우리를 애인·노예로 생각”

‘미투’ 휘몰아친 대학가… “우리를 애인·노예로 생각”

기사승인 2018-03-01 01:00:00

세종대·서울대·서울예대 등 온라인 고발 잇따라

학생회, 추가 피해사례 받거나 진상조사 진행 중

가해자, 권한을 권력 삼아 무방하다고 해석

“폭로 응답 없다면 2018년의 현상으로 남을 것”

성폭력 등의 피해사실을 폭로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대학가에서 확산되고 있다. ‘모텔 성폭행’부터 ‘강간 몰카’까지 피해자들은 교수나 선배로부터 당한 끔찍했던 기억을 더듬어내고 있다. 구조적 폐단이 만연한 가운데 드러나지 않은 미투가 더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문제의 요인이 자리한 대학 사회 등이 해결의 주체로서 응답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최근 대학가 온라인 게시판을 중심으로 교수나 선배 등에 의해 성희롱 및 성폭력을 당했다는 폭로 글이 휘몰아치고 있다. 지난 27일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졸업생은 “학부시절 지도 교수가 모텔에서 자신을 성폭행했지만,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될 것이 두려워 알리지 못했다. 그 교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어갔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해 파장을 더했다. 글에서 실명이 거론된 해당 교수는 현재 재직 중이다.

앞서 같은 학과의 한 재학생은 22일, 24일에 걸쳐 성희롱을 일삼은 전직 겸임교수의 존재를 알리며 “여배우라면 접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등 우리를 애인쯤, 노예쯤으로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학생회는 추가 성폭력 피해제보를 받고 있다.

세종대 외에도 피해사례 폭로는 곳곳에서 이어진다. 24일 서울대생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미술대 교수의 상습적 성희롱’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모 교수의 성희롱이 수업, 술자리, 엠티 등을 가리지 않았다. 희생자가 많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관련 내용은 서울대 인권센터에는 신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총학생회가 나서 조사를 진행 중이다.

20일 서울예술대에서는 게시글을 통해 오리엔테이션 때 벌어졌다는 ‘강간 몰카’ 사건이 불거졌다. 해당 글은 “남자 선배가 여자 선배를 방으로 끌고 갔고 비명과 신음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내 ‘몰래카메라였다’며 모두가 웃었지만, 제겐 끔찍하고 추잡한 트라우마가 됐다”는 내용을 담았다.

대학가에서는 아직 직접적으로 폭로가 일어나지 않았을 뿐 비슷한 사례를 낳은 구조적 폐단이 만연해있다는 분위기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자신이 저지른 성비위가 학내에서 불거지더라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면서 추행을 계속한다”면서 “권한을 권력 삼아 자신의 행동이 무방하다고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달 30일 한양대 지도교수 및 강사로부터 성희롱을 겪었다고 밝힌 휴학생은 자신의 SNS 계정에 “피해자로만 남지 않은 자신이 다행스럽다”는 글을 남겼다. 이어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다들 나와 많이 말씀하셔서 해결되길 바란다”고 독려를 전하기도 했다.

그간 대학 또는 구성원들이 방관하거나 비호하면서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공동체가 건강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대화와 소통이 바탕 돼야 하는데, 그 채널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전임교수의 성희롱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는 광주여대의 피해학생 중 한명은 “우리가 관련 사건을 끌어오는데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며 “사건의 해결이 이토록 길게 이어져 온 것은 어쩌면 학과 차원에서 교수에게 대적할 자신감이 부족했고, 대학 측에 대응하다가 오히려 입게 될 피해를 받아들일 용기가 학생 개인에게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김미리내 여성민우회 활동가는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가시화가 잘 안 된다”면서 “피해자가 속한 공동체가 문제 해결에 대한 주체의식을 분명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활동가는 “문제의 요인이 자리한 대학과 사회의 응답이 없다면, 악조건 속에서 용기를 낸 고백이나 고발은 2018년에 있었던 현상으로만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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