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영화 ‘허스토리’,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쿡리뷰] 영화 ‘허스토리’,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사승인 2018-06-27 00:13:00

6년간 23번의 재판. 10명의 원고단. 13명의 무료 변호인….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는 지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됐던 관부재판을 다룬다. 관부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낸 재판이지만, 지금껏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허스토리’는 이러한 값진 승리의 과정을 입체적인 인물을 통해 정공법으로 그려냈다.

부산의 여행사 사장 문정숙(김희애)은 1991년 우연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 전화를 개설하게 되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연을 듣게 된다. 참담한 사연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문정숙은 지금껏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할머니들을 위해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재판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문정숙은 10인의 원고를 이끌고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6년간 법적투쟁을 이어간다.

‘허스토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영화는 다양한 인물이 재판에 참여하는 과정을 큰 줄기로 엮어낸다. 6년간 관부재판을 이끌어가는 원고단 단장 문정숙을 비롯해, 원고단 배정길(김해숙), 박순녀(예수정), 서귀순(문숙), 이옥주(이용녀)는 각각 선명한 성격을 지닌 동시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각 인물의 사연은 재판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관객의 가슴을 울린다.

영화는 과거를 회상하는 대신 현재를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는다. 과거 잔혹한 사건을 겪은 인물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과거 몇몇의 위안부 소재 영화가 불필요하고 자극적인 회상 장면을 넣어 완성도를 떨어트렸던 것과는 반대다.

배우들의 호연도 빛난다. 김희애는 영화에서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한다”라고 외치는 문정숙 역을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김해숙의 조용하지만 치열한 열연도 마찬가지다. 배정길 역을 맡은 김해숙은 한순간의 표정으로 인물의 깊은 내면을 표현하며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원고단인 예수정, 문숙, 이용녀 또한 오랫동안 쌓아온 연기 내공을 아낌없이 선보인다.

원고단의 변호인 이상일 역을 맡은 김준한의 연기도 돋보인다. 그는 일본어 발음이 남은 한국어를 구사하며 재일교포 출신 변호사 역할을 매끄럽게 소화했다. 극 중 재판 진행 과정에서 문정숙과 다른 시각을 보이는 이상일 캐릭터는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허스토리’가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라는 사실이다. 조용하지만 힘 있는 전개와 연출, 캐릭터의 조화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훌륭한 그릇이 됐다. 

허스토리는 오는 27일 개봉된다. 12세 관람가.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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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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