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핵심 당사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행정처 업무 자료를 다량으로 확보했다.
22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지난 21일 임 전 차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그가 숨겨놓은 이동식저장장치(USB)를 발견해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해당 저장장치 등을 모두 파기했다고 주장해온 임 전 차장은 검찰에 “백업 USB를 사무실 직원에게 보관하게 했다”며 자료 은닉 사실을 시인했다.
앞서 검찰은 법원의 압수수색영장 줄기각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쓰던 컴퓨터 하드디스크 복사(백업)본 확보를 못하면서 첫 강제수사부터 차질을 빚었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자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반박했다.
영장 심사를 맡았던 이언학 부장판사는 검찰 측에 “주거의 안정과 평안을 해쳐야 할 정도로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기각사유를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장판사와 박 전 차장이 지난 2010년 서울고등법원의 같은 재판부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이번 판결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다만 유일하게 떨어진 임 전 차장에 대한 영장을 통해 반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임 전 차장은 양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행정처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각종 ‘재판거래’ 의혹 문건을 작성하거나 작성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아울러 지난해 법원을 떠나면서 재직 시절 생산하거나 보고받은 문건들을 빼돌렸다는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의혹 행위를 실행한 판사들과 이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의심되는 수뇌부 사이의 ‘핵심 길목’인 임 전 차장의 USB를 찾아내며 윗선 규명의 길을 가까스로 확보했다. 해당 USB를 사실상 유일한 결정적 증거로 삼아 재판 거래와 법관·민간인 사찰 등 각종 의혹을 풀어가게 된 것이다.
이 USB에는 임 전 차장 명의로 작성된 부적절한 문건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처장이나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기 위한 문건들이 다수 발견된 것이다. 이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임 전 차장의 USB가 발견되면서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강력한 자력에 의한 데이터 삭제) 방식으로 파기한 양 전 대법원장, 박 전 처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외에도 검찰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전후로 작성된 문건들을 추가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분석 결과에 따라 재판 거래 의혹 규모와 범위가 커질 수도 있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도현 기자 dobes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