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벨기에 입양된 박정술, 박산호씨
박산호 "어린시절 양엄마에 학대, 친부모 그리움 커"
박정술 "아이 키우며 정체성 찾아야겠다고 생각"
지금껏 총 5~11회 한국 방문했지만... 허사1일 친부모 찾아 창원시청 방문, 市 지원 약속
1일 오후 2시, 벨기에 국적의 산호 고골웽(48)씨와 이안 벡스(52)씨가 창원시청을 찾았다.
뜻밖에도 한국인 부모를 찾아달라는 이유에서였다.
둘의 한국이름은 박산호와 박정술,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산호씨는 지난 1973년 2월 18일 현재 남명세비앙이 위치한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의 구 마산애리원에 유기됐고 정술씨는 1971년 3월 19일 같은 곳에 남겨졌다.
산호씨는 두 살 때, 정술씨는 다섯 살 때 한국을 떠나 벨기에로 입양됐다.
토실토실했던 두 뺨은 말랐고 눈가엔 주름까지 졌지만 긴 세월이 향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이번이 산호씨에게는 11번째, 정술씨에겐 5번째 한국 방문이다.
이를 두고 한국에서 누군가가 농담처럼 던진 “벨기에에서 잘 살면서 부모를 왜 그렇게 찾냐”는 질문은 둘에게 큰 상처가 됐다.
만 2년 6개월의 산호씨는 벨기에로 입양된 첫 번째 가정에서 다시 버림받았다.
두 번째 가정은 싱글맘 가정이었다.
산호씨의 벨기에 이름은 그녀의 성(姓)인 고골웽(correwyn)에서 따온 것이다.
그 집엔 이미 2명의 한국인 입양아가 있었고 이어 산호씨, 그리고 이후에 1명이 더 와서 모두 4명의 한국인이 입양됐다.
당시 벨기에는 입양 열풍이 불고 있었다.
산호씨는 “입양을 한 가정은 훌륭한 평가를 받았고 이미지도 좋았다”며 “양부모의 가정 환경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입양을 허락한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곳에서 산호씨는 혹독한 14년을 보냈다.
그는 “양엄마는 나를 때리며 지하실에 가두고 밥을 적게 줬다”며 “양엄마는 부모로서 준비가 덜 된 상태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입양과 파양(罷養)을 연이어 겪으면 자존감보다는 또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선다”며 “당시엔 힘도,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17살이 되던 해 그는 집을 나왔다.
정술씨도 산호씨처럼 힘겨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다섯 살 때 입양된 정술씨도 불과 6개월만에 파양을 겪었다.
정술씨는 “첫 가정은 친자녀가 2명 있었는데 양부모가 6개월 만에 ‘더 이상 못 키우겠다’며 나를 입양기관으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입양기관에서 2~3일 머무른 정술씨는 다행히 또 다른 가정으로 입양됐다.
아이가 없는 집이어서 전과 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번엔 양부모가 이혼했다.
정술씨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아버지는 곧 재혼해 아이를 낳았다.
정술씨는 “동생이 태어나서 혼란스러웠다”며 “새엄마는 아이가 생기고 나서 내게 관심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994년 결혼과 함께 독립했다.
입양가정에서 생활하던 시절 정술씨와 산호씨는 “한국의 부모님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고 입을 모아 말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정술씨는 “자식을 키우며 한국의 부모님을 떠올렸다”며 “나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2005년 정술씨는 큰 애가 열한 살, 둘째가 여덟 살 때 한국을 처음 찾았다.
4년 뒤엔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와서 방송에서 “부모를 찾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산호씨는 그보다 전인 1996년 YWCA의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100여명의 입양인들과 한국을 찾아왔다.
그 뒤로 2~3년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해 친부모를 수소문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과거의 그들에 관한 기록이 전무한 탓이다.
산호씨와 관련된 기록은 마산애리원에 남은 수용자 대장의 입소날짜, 이름, 생년월일이 전부이고 정술씨는 고아로 기록된 호적등본(이름, 생년월일)이 고작이다.
이에 대해 산호씨는 “기록이 없다는데 굉장히 화가 나고 당황스럽다”며 “또 친부모가 원치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름과 생년월일에 불과한 나와 관련된 서류를 열람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둘은 유아기 때 한국을 떠난 탓에 한국어를 전혀 못했다. 이날 이들은 지인의 소개로 전홍표 더불어민주당 창원시의원을 만났고 전 시의원은 하루종일 통역을 담당했다.
답답해진 전 시의원이 “혹시 부모들이 기억할 만한 단서는 없냐”고 묻자 비교적 침착하게 말을 이어가던 정술씨가 흥분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윗옷을 걷어 올렸다.
정술씨의 오른쪽 가슴부터 옆구리를 지나 등까지 20㎝가량의 긴 수술자국이 보였다.
그는 “어렸을 때 폐병을 앓아서 수술한 자국이다”며 “친부모는 기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산호씨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엄지가 오른쪽 엄지보다 조금 짧다”며 두 손가락을 나란히 붙여 보였다.
이날 이 같은 두 사람의 사연을 들은 창원시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입양 전 기록 등을 토대로 언론사, 창원시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홍보할 예정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두 사람이나 친부모에 대해 알고 있는 시민들은 창원시 여성청소년보육과(055-225-3911)로 연락해달라”고 당부했다.
산호씨와 정술씨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직접 연락 달라”며 자신들의 이메일을 공개했다.
산호씨의 이메일 주소는 scorrewyn@gmail.com이고, 정술씨의 이메일 주소는 ian_bex@hotmail.com이다.
창원=정치섭 기자 cs@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