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살고 있는 서 모(26·여)씨는 폭염이 너무 심각해지자 에어컨을 구매하러 한 가전양판점에 들렀다. 마음에 드는 벽걸이형 에어컨을 고르고 언제쯤 받아볼 수 있는지 물었다. 직원은 에어컨 물량이 달려서 3일 후에나 해당 에어컨 생산이 시작되고, 배송기사가 배송까지 하려면 15일~16일은 걸린다고 설명해 서씨는 아연실색했다.
서씨는 "지금 사도 2주 후에나 배송된다는 말에 망연자실했다"면서도 "그래도 찌는 듯한 더위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일단 주문을 넣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서울 낮 최고 기온이 39.6도까지 올라가는 등 111년만에 맞이하는 사상 최대 폭염에 에어컨을 구매하고자 하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공급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전양판점과 온라인몰에서는 에어컨 판매가 급증하고 있지만 설치에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
전자랜드에 따르면 폭염이 계속된 올해 7월 에어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오해 1월부터 7월까지 에어컨 판매량을 살펴보면 전년 동기간보다 3% 성장했다.
이는 에어컨 구매를 생각하지 않았던 소비자들조차 에어컨 구매에 나서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자랜드 관계자는 "이 속도면 작년 전체 에어컨 판매량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한다"고 말했다.
이미 롯데하이마트에서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7월 14일부터 16일 기간 동안 전 주 같은 기간(7일~9일)보다 330% 늘어나는 등 폭염이 심해질수록 더욱 판매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위메프도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된 지난 12일부터 25일까지 2주간 계절가전 매출을 집계한 결과 전월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이동식 에어컨, 냉풍기, 서큘레이터 등 소형 냉방가전이 많이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식 에어컨이 1135% 급증했고, 냉풍기(253%), 에어컨(164%), 선풍기(135%), 서큘레이터(116%) 등이었다.
이 같은 판매량에 올해 에어컨 판매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미 지난해에 에어컨 판매량을 보면 역대 최고치인 250만대가 팔렸다. 국내 에어컨 대수는 지난 2016년 220만대, 2017년 250만대로 판매량 신기록을 경신해왔다.
현재는 예측된 수요보다 더 수요가 많아 에어컨 물량이 달리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근 들어 주문이 급증하면서 에어컨 생산라인을 풀가동하고 있지만 수요를 맞추지 못해 잔업까지 추가 편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소기업인 보국전자와 신일산업도 이동식 에어컨과 서큘레이터가 잘 팔리면서 홈쇼핑 앵콜 방송을 하며 생산 공정을 늘리고 있다. 이동식 에어컨의 경우 창에 배관을 끼우면 되는 가전으로 실외기 설치가 어려운 장소에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어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구매처인 11번가와 G마켓 등지에서의 캐리어·삼성전자·LG전자 상품 문의게시판에 보면 "더워서 죽을 것 같다", "살려달라"며 에어컨을 빨리 배송해 달라는 글이 넘치고 있다. 수요 폭발로 상품 입고가 지체되면서 원하는 날짜까지 배송이 될지, 차질이 없는지 걱정되어 문의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에 대한 에어컨 공식판매자의 공개 답변을 보면 "성수기라 설치까지 3주정도 소요된다"며 "정확한 설치일정은 기사님이 연락을 드릴 것이고 빠른 설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에어컨을 발명한 캐리어 박사님께 노벨평화상을 주어야 한다", "오늘부터 가장 존경하는 위인은 윌리스 캐리어"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에어컨 없이는 나기 어려워진 날씨에 숨통을 틔워준 것을 고마워하는 네티즌들의 자조적인 농담이다.
사상 최대 폭염이 8월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아직도 에어컨을 구매하지 않은 가구들은 이번 여름을 어떻게 날지 고민하고 있다. 특히 어린 아기나 어르신을 모시고 있는 가정에서는 더욱 그 걱정이 커지고 있다. 젊은 1인 가구들도 에어컨을 살지 말지 경제력을 저울질하며 고민하고 있다.
서울 봉천동에 사는 계 모(57·남)씨는 "그동안에는 그렇게까지 덥지 않아 선풍기로 견딜만하다고 느꼈는데, 이번 더위는 너무 심한 것 같다"며 "노모를 모시고 있는데 너무 더운 날씨에 건강이 악화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에 올라와 사는 지방 출신 김모(29·여)씨는 "그동안 에어컨이 빌트인으로 되어 있는 원룸에서 살다가 이번에 빌라로 이사를 왔는데, 집 안이 너무 더워 퇴근 후에는 거의 집근처 까페로 피신을 가고 있다"며 "곧 이사를 갈 것도 같은데 빠듯한 살림에 에어컨을 구매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폭염에 따른 에어컨 가동이 많아지면서 전기요금 경감대책을 가시화되고 있다. 다만 누진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손보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한국전력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에 여름철 최대 2만원까지 전기요금을 할인해 주고 있다.
폭염이 '재난'으로 선언되는 길도 열릴 예정이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오는 9월 임시국회에서 재난안전법에 폭염이 포함되도록 하는 법 개정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폭염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나 건강 악화 등을 구제받을 수 있게 된다.
한편 기록적인 폭염에 바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에어컨을 쐬며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불을 쓰지 않고 요리를 하려는 수요도 늘고 있다. 롯데하이마트에 따르면 미니빔프로젝터와 블루투스스피커의 매출은 지난해(7월 1일~15일)보다 40%, 30% 늘었다. 이 기간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 매출도 40%, 15% 늘었다.
집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홈웨어나 편안한 속옷의 매출도 늘고 있다. G마켓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노와이어 브라 및 팬티세트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124%) 증가했으며, 브라탑은 1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구현화 기자 ku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