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내내 영화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이 떠올랐다. 리얼타임 진행‧공간의 제약을 둔 연극적 연출과 인물들의 뚜렷한 자기주장, 막장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등. 공통점 많은 두 영화를 구분 지은 것은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였다. '완벽한 타인' 속 폭로의 주체가 타인, 즉 휴대전화였다면 '더 파티'(감독 샐리 포터)의 인물들은 스스로 저지른 잘못들을 실토한다. 심지어 당당하기까지 하다. 폭로의 대상이 사실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티장 도처에 자리 잡은 정치적 은유와 풍자를 눈치 챈다면 둘을 전혀 다른 영화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 파티'는 재닛(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보건복지부 장관 취임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 파티 장소는 재닛과 빌(티모시 스폴) 부부의 집이다. 초대받은 재닛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들은 선물이나 꽃다발이 아닌 각자 감춰둔 비밀들을 안고 파티장에 입장한다. 이후 시작된 폭로전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파티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정치를 개인의 삶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요소들, 예를 들어 인간관계나 권력 구조, 사랑과 욕망, 배신과 실망 같은 프리즘을 통해 접근하고 싶었다"라던 샐리 포터 감독의 기획 의도는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실현됐다. 일곱 명의 등장인물들은 현실주의, 이상주의, 여성주의, 명예와 돈 등 각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말하며 공론을 벌인다. 급박한 상황과 숨 막히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설전(說戰)은 정치적 상황에서의 흑색선전을 떠올리게 한다.
감독은 관객들이 집중하기 어려운 방해 요소들을 최대한 제거했다. 오직 인물의 대사와 행동에만 몰입하게 하기 위해서다. 흑백 화면의 구성,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음악, 적절한 배우 캐스팅, 정치 언어를 일상 언어로 바꾼 센스 있는 대사까지. 캐릭터 등장 분량의 균형을 맞추는 세심함도 보였다. 어느 한 캐릭터가 특별히 튀거나 지루하지 않다.
페미니즘 영화를 주로 연출해온 감독 샐리 포터의 영화답게 등장인물 과반수가 여성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감독은 남성보다 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여성 인물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장관 취임을 앞둔 재닛을 그의 남편 빌이 돕는 등 성 역할의 고정관념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레즈비언 커플 자넷(에밀리 모티머)과 마사(체리 존스)를 통해 페미니스트가 가진 고민과 한계점도 다룬다.
정치와 사상 이야기만 지루하게 늘어놓는 영화는 아니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관객도 매력을 느낄만한 포인트들은 많다. 유쾌한 슬랩스틱 코미디와 재치 있는 음악 선곡, 위트 있는 대사들에 공감하며 웃을 수 있다. 일부 인물들의 극단적인 주장은 국내 모 정치인을 떠올리게 한다. 오는 20일 개봉. 15세 관람가.
엄예림 기자 yerimuh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