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말모이' 까막눈에게 말이란, 우리란 무엇인가

[쿡리뷰] '말모이' 까막눈에게 말이란, 우리란 무엇인가

'말모이' 까막눈에게 말이란, 우리란 무엇인가

기사승인 2018-12-19 06:00:00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이란 어떤 의미일까.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는 까막눈 판수(유해진)를 통해 언어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말한다. 언어 안에는 국가와 민족이 있으며, 정서와 사람이 있다.

본인은 아들의 중학교 월사금 미납 독촉장도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지만, 아들만은 경성에서 제일가는 명문 중학교에 보낸 김판수. 판수는 어린 아들의 중학교 월사금을 내지 못해 길 가던 신사의 가방을 훔친다. 그러나 그 신사는 바로 조선어학회의 류정환(윤계상). 판수가 훔친 가방 안에는 조선말사전을 만들기 위한 사투리 원고가 들어있다.

여차저차해 판수는 조선어학회의 사환으로 취직하게 되지만, 류정환은 판수가 영 못마땅하다. 일제 치하의 조선에서 그렇잖아도 매 순간이 불안한데, 판수는 영 의리도 없고 허세만 가득해 보이는 탓이다. 자신의 가방을 훔치는 악연까지 얽힌 데다, 10년간 조선 팔도의 말을 모아온 정환에게 판수는 “돈을 모아야지, 말을 모아서 어디다 쓴다고. 도시락이든 벤또든 배만 부르면 된다”며 김을 뺀다. 

그러나 조선어학회에서 글을 배우며 점점 언어의 즐거움에 대해 눈뜨는 판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더듬더듬 읽어가며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어린 딸이 가나다보다 히라가나를 먼저 배우는 모습을 보고 말의 중요성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류정환을 타깃으로 잡고 조선어학회를 해체하려는 일본인들에 의해 조선말사전 원고가 모두 압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준말 공청회를 열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류정환을 보고 판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말모이’가 다루고 있는 것은 1942년 10월 있었던 조선어학회사건이다. 조선어학회는 1921년 한글을 연구하기 위해 만든 한국 최초의 민간학술단체인 조선어 연구회를 모체로 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에서 고유의 언어를 지켜낸 국가는 거의 없으나 한국은 고유의 글자와 언어를 고스란히 사용하고 있는 국가다. 영화는 지금의 한국어를 위해 싸웠던 인물들의 신념을 다루며, 언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집중해 비춘다.

배우 유해진은 그 시대의 가장 평범한 가장 판수를 맡아, 역사란 대단한 사람들의 것이 아닌 민중의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장 아이의 월사금도 내지 못해 쪼들려 도둑질을 하는 지경까지 내몰린 사람이, 본질적인 삶에 관해 고민하고 바뀌며 다른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그 특유의 연기력으로 고스란히 담아냈다. 류정환 역의 윤계상은 그런 유해진에게 장벽이었지만, 어느 순간 동지로 변화한다. 조선어학회 33인을 맡은 김홍파, 우현, 김선영, 민진웅, 김태훈 등의 이야기 또한 짧고 작지만 가슴을 저민다.

135분. 오는 2019년 1월 개봉 예정.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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