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2월4일~2월8일) 정치권은 설을 맞아 민심잡기에 나선 주요 정당의 귀성인사로 활기차게 시작했다. 주 후반부에는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일(2월27~28일)이 27일 예정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와 겹쳐 일정연기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지난해 서울역에서 귀성인사 행사를 진행한 데 반해 이번 설 전(2월1일)에는 용산역을 찾았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용산역 광장에서 ‘손다방’을 운영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홍보에 나섰다. 같은 날 한국당은 지난해에 이어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을 배웅했다. 행사에는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나경원 원내대표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당대표 후보들이 참석해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와 관련 김대진 조원씨앤아이(여론조사기관) 대표는 “민주당은 광주 등 호남 지역을 버리고서는 정통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호남선으로 향하는 용산역이 우위를 선점했다고 본다”며 “바른미래당 또한 국민의당이 당의 전신이기 때문에 지지기반인 호남을 공략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반면 한국당에 대해서는 “영남 지역에서 부활‧재건해야 하기 때문에 경부선으로 가는 서울역을 택한 듯하다”며 “늘상 있는 얘기”라고 답했다.
이밖에 정의당 지도부는 서울역에서 귀성인사를 한 뒤 경남 창원중앙역으로 이동해 인사를 이어갔다. 창원성산은 故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다. ‘호남 정당’이라고도 불리는 민주평화당은 광주와 전주 지역에서 귀성인사를 하며 핵심 지지층 민심 잡기에 집중했다.
여야가 주장한 이번 설 민심의 화두는 ‘경제’와 ‘김경수 경남지사 법정구속’이었다. 다만 같은 사안에 대해 여야는 정반대의 여론을 전달했다.
6일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설 민심 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특히 국토균형발전 23개 사업을 확정하고 이곳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한 데 대한 기대감이 컸다”며 지역경제 활성화가 물꼬를 텄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했다.
김경수 법정구속에 대해서는 “사법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아 사법농단 판사들이 아직도 법대에 앉아있으니 사법개혁을 제대로 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며 “사법개혁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국민이 사법부를 압박해야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다.
반면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같은 날 당 회의에서 “적자 메꾸기가 IMF 보다 더하다며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언제까지냐고 묻는 분들도 있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유의동 원내수석부대표도 “소득주도성장이 우리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면 어떻게든 견디겠는데 경제정책이 오락가락하니 경제기조 자체에 의심하더라”며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는 민심 여론을 전했다.
한국당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는 김경수 법정구속과 관련해 “온 세상이 잘못했다는 거 알고 있는데 청와대와 민주당만 모른 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여야의 상반된 주장에 대해 김대진 대표는 “제가 보기엔 민심을 빌려 ‘아전인수’격으로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면서 “이번 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지지율과 대통령 국정운영만족도가 상승했다. ‘북미정상회담’과 ‘전당대회’가 화두가 아니었나 싶다”고 밝혔다.
또 “국회에서의 화두와 국민 사이에서의 화두는 다르다”면서 “특히 ‘김경수 구속’은 수많은 정쟁 중 하나다. 2월 임시국회를 미루기 위한 꼼수가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연휴가 끝나갈 무렵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일자가 오는 27~28일로 확정되면서 한국당 내부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같은 날 예정된 한국당 전당대회의 ‘컨벤션 효과’가 줄어들 것이 확실시되면서다.
이 같은 상황을 둘러싸고 전당대회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연기론’과 실무적으로 연기가 어렵다는 ‘현실론’이 부딪혔다.
당 대표 후보자들 사이에서는 ‘연기론’이 우세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은 6일 SNS에 “북측이 한국당 전당대회의 효과를 감살 하려는 문재인 정권을 위해 한 술책에 불과하다”면서 “이번 전대를 한 달 이상 미루어 지방선거 때처럼 저들의 책략에 당하지 않도록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7일 공식 입장문에서 “당의 중요한 행사가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외부 요인에 영향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전당대회를 늦춰야 한다”고 밝혔다.
정우택‧안상수‧주호영‧심재철 의원 또한 SNS를 통해 국민의 관심과 기대 속에 한국당이 새롭게 부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일정 조정을 촉구했다. 또 심재철 의원은 8일 "나와 홍준표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주호영, 정우택, 안상수 의원은 일정변경을 선관위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단체 보이콧하기로 뜻을 모았다"고도 전했다.
다만 황교안 전 총리는 입장문을 내고 “저희는 정해진 27일에 맞춰 준비하고 있다”면서 “일정대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만 당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김진태 의원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전당대회 일정은 당에다 다 맡기겠다. 실무적인 건 어떻게 되든 당에 맡기고 저는 제 갈 길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전당대회 준비를 맡은 실무자들 사이에선 ‘현실론’이 힘을 얻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7일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에서 연기해야 한다는 강한 주장도 있었고, 연기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강하게 있었다”면서도 “저는 전대를 정해진 날짜에 열어야 한다는 의견에 상당히 동의한다. 새 지도부가 빨리 나와야 미북 정상회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대응을 좀 더 탄력적으로 할 수 있지 않겠나”고 했다.
선거관리위원회 부위원장 김석기 의원은 “(일산 킨텍스 외에) 1만명 이상 들어가는 장소를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빌리는 게 쉽지 않다”며 “모바일 투표, 현장투표 투개표 과정에서의 선관위 협조 문제도 중요한데 선관위가 3월 13일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에 매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전당대회 준비위원장 정갑윤 의원도 “결국 지지하는 세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오래 끌다가는 오히려 당내 갈등만 더 야기시킬 수 있지 않겠나”라며 연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당 대표 후보들의 전대 연기 요구에 대해 김대진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등 이하 후보는 실제 지지율가 아닌 인지도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지지율 높이기 위해선 군소후보 뿐만 아니라 오세훈 전 시장, 홍준표 전 대표에게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북미회담 화두가 핵폭탄급이지 않나”라면서 “전당대회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면 투표율도 떨어지고 군소후보에 대한 주목도도 낮아진다”면서 지지율 선두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될 것을 예측했다.
황교안 전 총리와 김진태 의원의 입장에 대해선 “(황교안의 경우) 선두를 달리는 후보로서 굳이 논쟁을 만들 필요는 없다. 김진태 의원은 대한애국당 지지층이 확고하다 보니 연기하는 데에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고 봤다.
한편 8일 한국당은 전대 선거관리위원회와 비상대책위를 열어 전당대회를 일정 변경 없이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선관위 여론조사, TV토론회 등을 미리 우리가 다 조정해놨고 대회 장소는 (새롭게 계약하는 게) 참 어렵다”며 이같이 알렸다.
엄예림 기자 yerimuh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