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는 서양권에서 악마를 상징할 때 가장 흔히 쓰이는 동물이다. 1999년, 강원도 시골마을에서 한 쌍둥이 자매가 태어날 때 염소들이 울었다는 내레이션으로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는 시작된다. 감독의 전작인 영화 ‘검은 사제들’을 아는 사람은 첫 시퀀스에서 또다시 가톨릭 계열의 구마 이야기가 펼쳐질까 예상하게 되지만, ‘사바하’는 보기 좋게 그 예상을 비켜나간다. 물론 그 비뚠 궤적은 예상을 벗어나되 기대를 배반하지는 않는다.
말이 목사지 종교적 흥신소에 가까운 일을 업으로 하는 박목사(이정재). 실제로도 그는 교회가 아닌 종교문제연구소를 운영한다. 사슴동산은 불교와 밀교를 바탕으로 한 수상한 종교단체로, 박목사는 불교 단체에서 사이비 박멸이라는 미명하에 연구비를 받기 위해 그들을 쫓는다. 그러나 강원도 영월의 한 터널에서 입에 팥과 부적을 문 여중생의 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과 박목사는 사슴동산 법당이 있는 건물에서 마주친다.
박목사는 사슴동산에 자신이 짐작한 것과 달리 심상찮은 배후가 있음을 직감한다. 그러나 터널 사건의 주요 용의자는 손을 쓸 틈도 없이 자살하고,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인 나한(박정민)을 파고들어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사슴동산의 법당에서 발견한 경전을 바탕으로 조사를 진척해나가던 박목사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스터리에 직면하게 된다. 1999년 태어난 이금화, 소년원 출신의 나한. 부처님이 아닌 4천왕을 모시는 사슴동산까지. 단서를 종합해가던 박목사가 마주하게 된 것은 무엇일까.
공포와 미스터리 장르영화에 흔히 쓰이곤 하는 수식어인 독창성과 강렬함. 그만큼 해당 장르영화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사바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내면서도 탄탄한 서사와 몰입도까지 갖춘 보기 드문 장르영화다. 전작인 ‘검은 사제들’로 성경에 기반한 서양의 오컬트를 스크린에 담아냈다면,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인 ‘사바하’는 불교나 도교를 바탕으로 한 동양의 오컬트를 스릴러의 문법으로 펼쳐냈다.
그뿐 아니다. 한국에 깊이 스며들어있는 불교와 토속신앙적 장치들을 십분 활용해 자칫 낯설 수 있는 요소들을 익숙한 옷처럼 관객에게 입힌다. 그 과정에서 사이비 종교의 오싹함과 맹목적인 믿음이 주는 공포는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가진다. 염소, 십자가, 사천왕과 악귀, 지옥과 뱀, 목사와 스님, 구원이라는 말과 폐쇄적인 시골의 환경까지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모든 소품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완성해낸 ‘사바하’의 매력은 다채롭다.
배우들의 쓰임새 또한 흥미롭다. ‘사바하’는 배우들의 열연에 영화를 맡기기보다는 체스 말처럼 적확하게 배우를 사용해 촘촘한 그림을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 옳은 영화다. 13일 서울 CGV 용산점에서 열린 ‘사바하’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장재현 감독은 "피를 토하고 뼈를 깎으면서 찍었다"며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만들었다. 배우들이 잘해줬으니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사바하’는 오는 20일 개봉한다. 15세가.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