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공기관이 철저한 통제와 관리가 미덕처럼 여겨졌던 40년전 유신정권 때 복무규정을 바탕으로 공익제보를 막으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공익제보를 인정하고 제보자를 지지하거나 보호해야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는 현 상황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행위다. 더구나 공익제보를 장려하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도 역행하는 것과 같아 논란이 커질 조짐이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사장 양봉민, 이하 보훈공단)은 1월 말, 한 장의 공문을 내부전산망에 띄우고 관리자급 인사들에게 개별 전송했다. 보훈병원 등 산하기구에도 전해졌다. 제목은 ‘복무질서 확립 및 관리 철저 특별지시’다. 목적도 간단하고 일견 타당해 보인다.
보훈공단은 "일부 소속기구에서 공단과 7000여명 구성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를 해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공직 분위기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엄정한 복무질서를 확립하자는 뜻"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내용이다. 보훈공단은 복무질서 확립을 위해 4가지 사안을 특히 유의해 관리해줄 것을 관리자들에게 당부했다.
이들이 당부한 4가지 사안은 ▲사적단체 구성 및 활동 등 복무질서 문란행위 ▲업무관련 비밀과 자료·정보의 언론 등 외부 유출방지 ▲허위사실 유포와 선동, 조직 내 갈등 조장행위 ▲업무태만과 근무지 이탈 및 기타 건전한 업무분위기를 저해하는 행위다.
이와 관련 보훈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의사는 “조금 황당하다. 공익제보를 관리자들이 평소에 관리하며 철저히 막고 만약 공익제보로 인해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제보자를 색출하겠다는 것 아니냐”면서 “평소에도 외부에서 제보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면 개선하기보단 감사 등을 통해 제보자 파악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비단 그만이 아니다. 의료계와 노동계 관계자, 민간기업 직원은 물론 정부부처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공문을 접한 이들의 첫 반응은 한결같이 ‘미쳤다’ 혹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었다. 한 의료계 인사는 공문의 진위여부까지 의심하며 “사실일 리가 없다. 만약 사실이라면 공익제보를 기관이 통제하거나 처벌하겠다는 것”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A씨는 “시대가 어느 시댄데 이런 걸 강제하는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이런 내용을 공문으로 내렸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 목을 죄는 꼴”이라며 한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문을 본 한 공무원조차 “업무상 알게 된 비밀에 대해서는 발설하거나 내용을 유출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내부고발을 막겠다는 의도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굳이 언론을 언급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생각을 전했다.
의혹은 비단 공익제보를 막겠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노동조합 관계자 B씨는 “사적단체 구성 및 활동, 선동, 조직 내 갈등조장이라는 항목 또한 노조활동을 방해하거나 내부 직원들을 통제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며 “마치 유신시대 복무규정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같은 반응을 전해 들었음에도 보훈공단은 이들의 해석을 부정하며 해당 공문의 유출에 대해서도 ‘문제’라며 불편해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공문으로 작성된 복무질서 확립을 위한 지시사항은 40년을 이어온 보훈공단 복무규정에 있는 내용으로 문제될 것이 없으며, 수신처 외 다른 곳으로 전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반응이다.
공문을 발송했다는 공단 관계자는 “이 문서까지 밖으로 나갔냐”고 한숨지었다. 이후 “최근 허위사실이나 거짓 정보가 외부로 유출돼 기사화되거나 회자된 일들이 있었고, 정정보도나 수정을 요구했음에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들이 있어 주의나 경각심을 주고자 문서가 하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상적인 정보공개 절차에 의해 공개되는 것이 아닌 내부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은 문제라는 취지에서 전해진 공문일 뿐”이라며 “공익제보를 기관에서 의도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40년이 다 되가는 공공기관의 복무규정에 나와 있는 업무상 비밀을 유지할 의무를 강조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