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지금 무장 중

병원은 지금 무장 중

"안전한 진료환경, 환자 위한 것"… 아쉬운 정부지원 속 피해방지에 ‘구슬땀’

기사승인 2019-03-09 01:00:00

최근 병원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2019년을 6시간 앞둔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진료 중이던 임세원 교수가 살해된 사건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이 오가는 병원에서 환자도 보호자도, 병원 직원도 무기력하게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무장한 보안요원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과거 별다른 장비 없이 말끔한 양복차림이던 이들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본적으로 칼이나 흉기로부터 몸을 보호할 방검복을 걸치고 손에는 무전기와 삼단봉을 들었다. 

일부는 치안퇴치용으로 알려진 스프레이나 전기충격기를 소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가스총이나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는 테이저건을 허리춤에 차고 병원 출입구나 응급실, 입원병동, 안내테스크, 심지어 검사실이나 외래 복도에서 위용을 과시한다.

보안요원들만 늘어난 것도 아니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진료실 복도를 비롯해 병원 곳곳에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설치됐고, 의사들의 진료책상 위에는 긴급상황 발생시 외부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호출용 비상벨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위협으로부터 빠른 회피가 가능하도록 별도의 출입구를 만들어 옆이나 뒤쪽에 위치한 진료실로 몸을 피할 수 있도록 하거나, 위해로부터 의료인이 충분히 몸을 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진료책상의 위치나 모양을 변형하는 등의 고민도 하고 있었다.

몇몇 의료기관은 주변 경찰서와 업무협약을 맺고 비상벨이 울릴 경우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가하면, 경찰의 순찰 동선에 의료기관이 중복 포함될 수 있도록 바꾸고 순찰 횟수도 늘려 사건을 방지하려는 노력들도 기울이고 있었다. 

시설과 인력의 변화만이 아닌 국민의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활동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강북삼성병원은 故임세원 교수 사망사건 이후 ‘지금 응대하고 있는 직원은 당신의 딸, 당신의 손녀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의료현장에서는 간호사지만 한 집안에서는 외동딸이 폭언과 폭행에 노출될 수 있다고 감성을 자극했다. 

여타 병원들도 ‘당신의 말과 행동, 누군가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습니다’라거나 ‘병원직원에 대한 폭언·폭행·협박 및 재물 손괴 행위 등을 엄하게 형사처벌합니다’ 등의 문구를 내걸고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최근 의료계 내에서는 “의사가 행복해야 환자도 행복하다”며 의료기관 내 안전문제는 궁극적으로 환자진료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의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특히 보훈병원의 변화가 눈에 띈다. 중앙보훈병원은 응급실과 강동경찰서가 직접 연결된 ‘안전병원 핫라인’을 구축했다. 응급실에서 폭행이나 폭언, 재물손괴 등 사건이 발생해 병원 직원이 버튼만 누르면 경찰은 응급실에 설치된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현장의 소리를 직접 듣고 녹취 및 경고 등을 할 수 있다. 사건발생과 동시에 즉각적인 현장출동도 당연하듯 이뤄진다.

이와 관련 김봉석 중앙보훈병원 원장대행은 “중앙보훈병원의 경우 전투상황 등을 경험하며 다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 국가유공자들이 진료를 받는 곳으로 여타 의료기관에 비해 폭력이나 폭행, 재물손괴사건이 빈번히 발생하는 축”이라며 “유리창이 깨지고 의사의 팔이 부러지는 등의 일은 예사다. 코드M이라는 별도의 사건발생 호출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코드M이 발생하면 내부 보안요원을 비롯해 직원들이 현장으로 즉시 달려가게 된다. 때에 따라 경찰과의 협조를 얻어 상황을 진화하기도 한다”며 “병원이 깨끗해지고 규모가 커진 후 보안인력도 늘어나니 코드M 발생이 줄었다. 하지만 사건은 조심해도 터진다. 이에 핫라인 구축과 긴급호출을 위한 비상벨 설치하는 등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여 변화를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변화가 정부의 이해와 지원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분명히 했다. 김 대행은 “보훈병원은 보훈처의 승인과 보훈복지의료공단의 예산지원으로 인력과 시설을 일부나마 개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간병원은 엄두를 내기 힘들 것”이라며 “의료기관의 안전은 결국 환자를 위한 것이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오는 15일 ‘안전진료TF’ 9번째 회의를 열기로 하고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수가지원방안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수가 수준은 보안요원 1명을 지속적으로 고용하기도 어려운 정도다. 

더구나 의료기관마다 상황이나 시설, 요구되는 사항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특정 항목으로 수가지원이 제한되는 등 기관별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힘든 경직성 또한 보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어 논란도 예상된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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